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6)-원천석의 지조를 배우고 싶다
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6)-원천석의 지조를 배우고 싶다
  • 이승하
  • 승인 2022.12.0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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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작업
사진= 한송희 에디터 작업

 

원천석의 지조를 배우고 싶다

 

興亡有數ᄒᆞ니 滿月臺秋草ㅣ로다

五百年 王業牧笛의 부쳐시니

夕陽의 디나ᄂᆞᆫ 손이 눈물겨워 ᄒᆞ노라

 

(흥망이 운수가 있으니 만월대도 가을의 풀잎이로다

오백년 왕들의 대업이 목동 피리에 남아 있으니

해질녘 지나는 길손 눈물겨워 하노라)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은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고려 말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개탄, 치악산에 들어가 스스로 밭을 갈며 부모를 봉양하고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며 지냈다.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이 된 이방원李芳遠을 어릴 때 가르친 바 있어, 태종이 즉위한 뒤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리고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방원은 임금이 되기 직전에 옛 스승인 운곡을 찾아 다시 관직에 앉히고 정사를 논하고자 첩첩산골인 치악산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강직하고 절개가 곧았던 운곡은 방원과의 만남을 꺼려 일부러 치악산 골짜기로 몸을 숨겨 만나주지 않았다. 방원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안 운곡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노파에게 자신을 찾는 사람이 오거든 횡지암 쪽으로 갔다고 말해달라고 당부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피신했다. 방원은 노파가 가르쳐주는 곳으로 갔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태종이 사흘 머물렀던 이곳을 태종대太宗臺라고 한다.

운곡시사耘谷詩史에 실려 있는 회고조의 이 시조를 보면 고려가 망했다고 하여 조선의 임금을 섬기지는 않겠다는 지조가 문면에 깔려 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이 운수에 매어 있다고 탄식하는 이 시조의 화자는 만월대에 와보고 한숨을 내쉰다. 만월대는 개성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다. ‘오백년 왕업은 당연히 고려조 500년의 역사를 가리키는데, 왕조가 멸망하여 목동의 피리 소리에 남아 있으니, 석양에 나그네()가 이곳을 지나다가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제자였던 임금이 불러도 조정에 나가지 않은 것은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운곡이 만년에 야사野史6권을 저술했지만 화를 두려워한 증손이 불살랐다고 한다.

선거 때가 되면 이 땅의 선량들은 탈당과 재입당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다. 심지어는 여당과 야당의 자리를 바꿔 타는 경우도 있었다. 공천에 탈락하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당선되면 상대방의 당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조가 없으니 이와 같이 표리부동하다. 원천석의 이 시조를 고등학교 때 제대로 배웠다면 손바닥 뒤집기를 밥 먹듯이 하는 선량하지 않은 선량選良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이승하시인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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