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작가 3편, 호러 작가, 아신유
어쩌다 작가 3편, 호러 작가, 아신유
  • 윤여경
  • 승인 2022.12.08 15:43
  • 댓글 0
  • 조회수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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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지금은 소설가가 되는 중입니다
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나는 17년차 성우이다.

내가 이렇게 긴 시간을 성우로 살아왔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한 가지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에세이를 의뢰받고 내가 성우로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보니 그제야 긴 세월이 실감난다. 성우가 되기로 결심한 날을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기 바로 전날,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극히 사소했지만 인생의 흐름을 바꿔 버린 강력한 사건이었다. 시험을 하루 앞둔 그날 나는 별 생각 없이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당시 유행을 하던 싸이월드에 접속을 한 순간, 매우 낯설고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보게 됐다. 첫 화면에 성우 지망생들의 클럽이 소개된 것이었다.

성우라는 단어를 본 순간 갑자기 마음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이거다. 내가 정말 해야 할일은 바로 이거야!’ 나는 난데없이 성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했고, 성우라는 직업에 대해 검색하며 꿈에 부풀어 하루를 보냈다. 또한 바로 클럽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고 스터디 신청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에세이를 쓰고 있다.

, 다음날 공무원 시험은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시험은 안 봤다. 내 갈 길을 찾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시험을 보기로 한 친구에게 왜 안 왔냐고 연락이 오고 난리가 났지만 난 그저 담담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평상시에 관심도 없던 일에 어떻게 아무런 보증도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자신의 길이라 확신할 수 있었을까? 바로 다음날 있을 공무원 시험까지 내팽개치면서 말이다.

굳이 답을 말해보자면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그때 당시 내 머릿속에는 그저 성우가 됐을 때의 모습만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서 열심히 성우 연습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후 17년이란 세월을 해온 것을 보면 나름 인정받으며 열심히 살긴 살았나 보다.

이번엔 작가를 결심하게 된 얘기를 할 차례인 듯하다. 사실 여기에는 큰 그림이 하나 숨어있다. 성우조차도 실은 이 큰 그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지금은 사라진 하이텔의 공포소설 게시판의 인기 작가였다. 나조차도 그걸 몰랐었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필명이 마라였던가 그랬다. 짧은 분량의 공포 단편 두 편을 올렸었는데 쓰고 나서 장난 삼아 업로드한 후 잊고 지내다가 한참 후에 들어가 보니, 조회수가 다른 작품의 몇 십 배였던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3.5인치 디스켓에 저장됐던 그 소설 파일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사라졌고 지금은 희미한 기억만 남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그 엄청난 조회수 덕분에 글쓰기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언젠가 나이가 들어 여유로워지면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때 당시 나는 기타리스트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전업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죽기 전에 괜찮은 소설을 하나쯤 쓰면 좋겠다는 의식 정도였다.

 

90년대 PC통신 하이텔 소설 게시판. 사진출처 쿨미의 추억창고 블로그
90년대 PC통신 하이텔 소설 게시판. 사진출처 쿨미의 추억창고 블로그

 

세월이 흘렀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고, 기타리스트는 포기한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한 프랑스 작가가 나에게 소설가의 꿈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켰다. 바로 르 클레지오였다. 정확히 말하면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를 읽고,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느꼈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이 책으로 인해 나만의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의 매력을, 그리고 문장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르 클레지오의 글에 빠져서 대형 서점에서 주최한 특강까지 가서 강의도 듣고 그를 눈앞에서 본 적도 있다.(책표지의 사진하고 정말 똑같더라. 심지어 옷 입은 것까지.) 르 클레지오의 글들은 여전히 나의 소중한 작품 목록이고, 나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들은 판타지를 초월한 판타지 소설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책을 읽던 때가 인생의 전환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이후로 반드시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생겼으니 말이다. 르 클레지오 같은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르 클레지오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그건 좀 힘들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을 쓰며 인생 돌아보는 지금, 온갖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40대가 되었다. 평생 사고 치지 않고 온순하게 부지런히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되돌아보면 한심한 짓에 빠져 있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괜히 센 척하며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가 발목이 부러지기도 하고, 주식으로 전 재산을 잃기도 하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나의 마음속에는 늘 부글부글 끓는 커피포트가 있는 것 같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지독한 뭔가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엔 각자의 커피포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모두들 마실 수도 버릴 수도 없는, 후회와 원망의 커피를 끓이며 살아간다고나 할까. 끝없이 졸여져서 새까맣고 끈적한 덩어리만 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즐겁게 살고 있다. 왜냐고?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7년 전 어느 날 막무가내로 성우의 꿈을 불태우게 됐듯이, 지금 나에게 그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행복해서, 어쩌다가 좋은 문장 비슷한 것이라도 쓰면 너무 보람차서 자꾸만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17년 전 그 날처럼 다른 일을 거의 그만두고 소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생활의 최우선 순위를 글쓰기에 둔 것이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현실이 안정된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17년 차 성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에게는 이미 순수한 열정만으로 인생 1막을 성공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열정이 마법처럼 나에게 길을 열어준 것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음껏 빠져들어서 글을 쓴다면 세상이 조금은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 만약 알아주지 않는다면 솔직히 괴로울 것이다. 또 한 번 커피포트가 삐-소리를 내며 끓겠지. 하지만 괜찮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역시 이미 겪어본 삶의 풍파니까.

그렇습니다. 내 나이 마흔 둘. 인생 2막을 열며 지금은 (호러)소설가가 되는 중입니다.

 

 

작가 소개

아신유

네오픽션 출판사와 호러 소설 장편 계약 후 집필 중

브릿G 연재 중인 호러 소설들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403893&novel_post_id=1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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