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을 즐긴 옛 선비의 노래
秋江에 밤이 드니 믈결이 ᄎᆞ노라
낙시 드리오니 고기 아니 무노라
無心ᄒᆞᆫ ᄃᆞᆯ빗만 싯고 뷘 저어 오노라
(가을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갑구나
낚시를 드리우지만 고기가 안 무네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은 왕족인 덕종의 맏아들이고 성종의 형이다. 가을 달밤에 배를 띄워 노니는 한적함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조다. 각행의 끝을 ‘~라’로 끝맺음으로써 각운의 효과를 노렸다.
낚시의 묘미는 고기를 낚아서 그 자리에서 요리를 해 먹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시조를 쓴 월산대군은 고기를 잡지 못한 데 대해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도무지 물지 않아서 그냥 돌아가게 생겼는데,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하면서 ‘유유자적’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각박한 수험생 생활 가운데 이런 시조를 한 수 배움으로써 옛사람들의 풍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좋으련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이른바 ‘먹방’이 정말 많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맛보고 싶다. 그런데 그것의 대다수가 육류건 어류건 살아 있는 것들의 목숨을 끊어서 요리해 먹는 것이다. 다들 먹음직스럽게 요리해서 맛있게 먹는다. 낚시 채널을 보면 월척을 잡았다고 사람들이 웃지만 살아서 발버둥이치는 녀석들을 보면 딱해 죽겠다.
우리네 현대인의 삶은 대체로 번잡하거나 각박하다.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성과 중심주의다. 성공이 아니면 실패로 간주되며,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가 중시된다. 점수, 성적, 성적순 같은 것을 따지면서 경쟁의 대열로 내모는 것이 이 땅 고교 교육의 현주소이긴 하지만 수업시간에 조선도 왕족 중에는 이런 로맨티스트가 있었다고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면 입시의 중압감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시조의 향취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