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철의 낭만적 기질
재 너머 成勸農 집의 술 닉단 말 어제 듯고
누운 쇼 발로 박차 언치 노하 지즐 ᄐᆞ고
아야, 네 궐롱 겨시냐 鄭座首 왓다 ᄒᆞ여라
(재 너머 성 권농 집에 술 익었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눌러 타고
아이야, 권농 계시냐 정 좌수 왔다 해라)
‘成勸農’은 성혼(成渾, 1535〜1598)을 가리킨다. 권농은 지방의 방坊이나 면面에서 농사일을 권장하는 직급이고 좌수는 향소鄕所의 우두머리로 둘 다 벼슬이라기보다는 명예직에 가깝다. “언치 노하 지즐 ᄐᆞ고”가 무슨 뜻인가 하면, ‘언치’란 안장 밑에 까는 짚이나 털이고, ‘지즐’은 ‘눌러’이다. 소 등에 털 헝겊을 깔고 앉아 술친구 성혼을 찾아가는 자기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막걸리가 잘 익었으므로 놀러 오라는 전갈을 듣고는 소를 타고 가서 그 집 하인에게 외친다. 나 정 좌수가 왔다고 전하여라.
혼자 마시는 술도 정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랑 같이 마셔야 흥이 배가되는 법이다. 이런 낭만적인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정철은 풍류도인 같은 마음으로 시조도 많이 썼다.
이와 같이 시골 한적한 마을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을 노래했던 정철(鄭澈, 1536〜1593)이었지만 당쟁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서인의 최전선에서 남인과 동인을 못살게 굴었다. 나중에는 보복을 당하기도 해 귀양도 여러 번 갔다. 하지만 정철이 당파싸움에 밀려 일찍 죽었다면?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송강가사」 등이 없었다면? 아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성혼은 동서 분당기 때 서인과 정치적 노선을 함께 했고, 이 율곡과 함께 서인의 학문적 원류를 형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철도 서인이었다. 성격이 유했던 성혼과 달리 대쪽 같은 성격이라 수시로 귀양을 갔다. 결국은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送亭村에서 살아가 58세로 죽었다. 길지 않았던 생애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조선조 가사문학 최고 수준의 작품을 연이어 썼다. 정치적 행보는 모난 돌 같았지만 이런 시조를 보면 그의 심성에 아주 유쾌한 구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