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18)-친구에게 감 대신에 감 소재 시를 선물하다
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18)-친구에게 감 대신에 감 소재 시를 선물하다
  • 이승하
  • 승인 2022.12.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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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친구에게 감 대신에 감 소재 시를 선물하다

 

盤中 早紅감 고아도 보이ᄂᆞ다

柚子 안이라도 품엄즉 ᄒᆞ다마ᄂᆞᆫ

품어 가 반기리 업슬싀 글로 셜워ᄒᆞᄂᆞ이다

 

(소반 위 붉은 감이 고와도 보이는구나

유자 아니라도 품을 듯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어 그래서 서러워하느니)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이 시조는 조홍시가早紅柹歌라고 불리어지는데, 감이 보기 좋게 열린 시골에 가면 꼭 뇌리에 떠오르는 작품이다. 반중은 소반 위, 조홍감은 일찍 익은 붉은 감이란 뜻이다. 1601(선조 34), 박인로의 나이 마흔한 살 때에 경북 영천에서 쓴 것이다.

박인로는 나이 마흔을 기점으로 전반기는 무관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고 후반기에는 고향 영천에 은거하면서 시작과 학문의 즐거움을 만끽하다 82세로 졸하였으니 참으로 부러운 생애다.

만년에는 여러 유학자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이덕형李德馨과는 의기가 투합하여 수시로 만나서 우정을 나누었다. 1601년 이덕형이 도체찰사가 되어 영천에 이르렀을 때, 박인로를 만나 이 고장 감나무에 달린 감들이 참으로 탐스럽게 열렸다고 말하자 박인로는 이 시조를 즉석에서 써 선물하였다.

중장은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잘 아는 중국의 삼국시대 때였다. 육적陸績이란 사람이 여섯 살 때 구강九江이란 곳에서 아버지 육강과 함께 원술을 만났는데, 원술은 육씨 부자에게 귤을 대접하였다. 어린 육적은 원술 장군 앞에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몰래 귤 두 개를 꺼내 자신의 품속에 넣었고, 나가면서 인사를 하다가 그만 귤이 떨어져 떼구루루 굴렀다. 원술이 육적에게 육랑(陸郞, 육적을 가리킴)은 손님으로 와서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는가(陸郞作賓客而懷橘乎)”라고 물었다. 이에 육적은 집에 계신 어머니에게 이 귤을 드리고 싶었습니다(欲歸遺母)”라고 대답하였다. 원술은 어린 육적의 효심에 감동하고 귤도 더 싸줬다고 한다. 이 일화는 원나라 때 곽거경郭居敬이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의 효행을 서술한 이십사효二十四孝에도 실릴 정도로 효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박인로는 감이 너무 예뻐 품에 넣고 갈 정도지만 내게는 어머니가 안 계시니 너무나 서럽다고 한숨을 내쉰다. 그와 동갑내기였던 이덕형은 이 시조에 완전히 반해 평생 그와 친구로 사귄다. 박인로는 70여 수의 시조를 남겼지만 그의 대표작은 9편의 가사다. 선상탄」 「사제곡」 「누항사」 「영남가」 「노계가」……. 임진왜란 때 만호萬戶였던 박인로가 전사했다면? 이런 명작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이승하시인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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