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24)-강대국에 휘둘리고 매국노에 치를 떨고
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24)-강대국에 휘둘리고 매국노에 치를 떨고
  • 이승하
  • 승인 2022.12.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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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강대국에 휘둘리고 매국노에 치를 떨고

 

두터비 ᄑᆞ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ᄃᆞ라 안자

건넛ᄇᆞ라보니 백송골白松鶻이 떠 잇거ᄂᆞᆯ 가슴이 금즉ᄒᆞ야 풀덕 뛰여 내ᄃᆞᆺ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ᄂᆞᆯ랜 낼싀만졍 어혈질 번ᄒᆞ괘라

 

(두꺼비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올라가 앉아

건너 산 바라보니 흰 송골매가 또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쩍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 자빠져 갖고선

마침 날랜 나였기 망정, 멍이 들 뻔하였지)

 

조선조 후기에 나온 엇시조인 이 작품은 아주 예리한 현실풍자시다. 두꺼비가 입에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올라가 먼 산을 바라보니 송골매가 한 마리 자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피하려고(숨으려고) 풀쩍 내딛다가 두엄더미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이처럼 눈치 빠르게 신속히 처신해서 타박상 정도 입은 데서 끝났다, 죽을 운명이었는데 이를 피한 내가 대견하다고 자위한다.

이 시조에서 두꺼비는 조선조의 무기력한 양반계층을 지칭한다. 파리는 이리 뜯기고 저리 치이는 백성이다. 흰 송골매는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는 강대국이다. 빈틈만 보이면 나라를 꿀꺽 삼키려고 욕심을 냈던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러시아ㆍ일본 여섯 나라 중 최후의 승자는 일본이었다.

파리 목숨인 백성은 두꺼비도 밉고 송골매도 밉다. 어떤 때는 두꺼비가 송골매에 당하는 것이 고소하기도 하다. 특히 임금과 신하들이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갔던 일, 병자호란 때 임금이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한 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의 강화도 함락 등을 모르고 있냐 하면 그렇지 않다. 백성을 지켜주어야 할 임금과 신하들이 파리를 잡아먹고 사는 두꺼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이 시조를 쓰게 하였다. 조선조 후기에 많이 창작된 엇시조(초ㆍ중ㆍ종장 중 한 장이 길다)와 사설시조(초ㆍ중ㆍ종장 중 두 장이 길다)는 저항의 시편이다. 이 시조처럼 작자의 이름을 알 수 없고 현실을 비판ㆍ풍자한 것이 많았다.

 

사진=이승하시인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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