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의 낱말 13
―왜가리
문무학
왜가리는 현장에서 시위하는 꾼이다
왜? 가리
왜? 가리
구호를 외치면서
습한 땅 농성장 삼아
텃세하는 텃새다.
왜가리는 회색 옷의 고집 센 스님이다
왜? 가야 하는지를
화두로 물고 서서
두리번
두리번거리면서
왜, 왜, 경(經)을 읊는다.
가는 일도 머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갈 수 없어 머물고
머물 수 없어 갈 테지만
왝 왝 왝
울음소리로 포기 않는
왜? 가리.
―『두레문학』(2020년 가을호)에서

<해설>
문무학 시인의 우리말 실험은 정말 재미있다. 외래어의 공세에, 아이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준말 유행에, 국적 불명의 신조어 탄생에 우리말이 비틀거리고 있는 요즈음에 문무학 시인의 말놀이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집현전 학자들의 공부처럼 진지하다.
우리나라에 흔히 볼 수 있는 백로과의 새 왜가리는 왝, 왝 하고 울어서 왜가리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정수리와 목, 가슴과 배는 희고 등은 청회색인데 다리와 부리가 길어 아주 기품이 있다. 시인은 왜가리가 철새가 아닌 텃새인 것에 주목하였고, 어디 멀리 가지 않는 생태를 이용하여 한 편의 시조를 썼다. 왜가리를 가끔 보면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는 거미인 양 가만히 있다. 가끔 왝 왝 소리를 질러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각 연의 첫 행이 아주 재미있다. “왜가리는 현장에서 시위하는 꾼이다”와 “왜가리는 회색 옷의 고집 센 스님이다”는 왜가리의 생태적 특성을 말해주고 있지만 “가는 일도 머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는 시행은 말의 유희에 머물지 않고 철학적인 고찰과 존재론적인 성찰로 나아간다.
“왜? 가리”라는 말이 원효와 의상의 고사로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원효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법성종의 시조가 되었고 의상은 갔기 때문에 화엄종의 문을 열었다. 스님이라고 하지 말고 원효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수행 중인 스님은 한 사찰에 오래 머물지 않고 산천경개를 보면서 탁발에 나서는데 왜가리는 그런 스님을 보면서 묻는다. 왜 가리?
왜 가리? 꼭 가야만 득도하는 것은 아닐 텐데. 나처럼 여기 머물면서도 법상종의 문을 열고 수많은 책을 쓸 수 있지 않은가. 우리네 삶이란 것도 갈 수 없어 머물고, 머물 수 없어 갈 테지만 말이야.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