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17) / 시인은 아픔을 더 강하게 느끼는 자입니다 – 최승자의 ‘근황’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17) / 시인은 아픔을 더 강하게 느끼는 자입니다 – 최승자의 ‘근황’
  • 이승하
  • 승인 2023.01.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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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근황  

최승자 


못 살겠습니다
(실은 이만하면 잘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한다면, 죽여주십시오

생각해보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내 죄이며 내 업입니다
그 죄와 그 업 때문에 지금 살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살아 있습니다.

ㅡ『현대시학』(1991.2)에서

 

<해설>

최승자 시인의 안부가 궁금하다. 1952년생이니 이제 70대로 접어들었다. 많이 편찮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10년 전 일이다. 병원에 계시다고 하는데 이번 겨울도 잘 넘기고 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내면 좋겠다. 

1990년에 쓴 시였을 것이다. 40대 말인데 시인의 자괴감과 좌절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자괴감과 좌절감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시인은 밝히지 않는다. 다만 타인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거듭 말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정신분열증의 증세다. 우리는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현대인은 대다수가 약간은 우울증 환자다. 잠을 못 자거나, 악몽을 꾸거나,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내 은사님 구상 시인의 말씀대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말 “생각해보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그게 내 죄이며 내 업입니다/그 죄와 그 업 때문에 지금 살아 있습니다”는 시적인 수사가 아니라 진심일 것이다. 이런 말을 하기에 최승자는 진정한 시인이 아닌가. 시인이란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하지만 자신도 늘 더 자주 괴로워하고, 더 잘 다치고, 더 죄스러워하는 존재인 것을.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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