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천화장장 화부 아저씨
이승하
먼동이 터 오는 시각쯤에 세수를 하며
그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오늘은 또 몇 구의 시체가 들어올까
겨울로 막 접어들거나 날이 풀릴 때
더욱 바빠진다는 그대, 아무 표정 없이
불구덩이 속으로 관을 넣는다
줄지어 선 영구차, 선착순으로 받는 시신
울고 웃고 미워하고 용서했던 사람들의
시간을 태운다 거무스레한 연기가
차츰차츰 흰 연기로 변한다
구름을 데리고 와 낮게 드리운 하늘
아, 이게 무슨 냄새지
화장장 가득 퍼지는 오징어 굽는 냄새 같은
짐승의 똥 삭히는 거름 냄새 같은
잘게 빻아주세요
뿌릴 거요 묻을 거요
땅에 묻을 겁니다
묻을 거라면 내 하는 대로 놔두쇼
잘게 빻으면 응고가 됩니다
한 시간을 타고 빗자루로 쓸어 담겨
분쇄기에서 1분 만에 가루가 되는 어머니
검게 썩을 살은 연기와 수증기로 흩어지고
하얀 뼈는 이렇게 세상에 남는구나
체온보다 따뜻한 유골함을 건네는 화부
어머니는 오전 시간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화부는 화장장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운다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나온다
표정 없는 저 화부가 김천화장장이다
―『생애를 낭송하다』(천년의시작, 2019)에서

<해설>
명절을 보내고 나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더 난다. 어머니를 여읜 세상 모든 자식이 다 비슷한 감회로 이번 설을 보냈을 것이다. 자식은 어머니 살아계실 때 좀 잘해드릴 것을, 명절 때 찾아뵙고 하루나 이틀 얘기라도 나눌 것을, 뒤늦게 후회하면서 눈물을 삼킨다. 어머니는 자식이 효도하길 기다리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난다. 우리는 효도를 선물을 사드리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운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전화라도 가끔 드릴 것을, 명절 아닐 때 찾아뵙고 외식이라도 할 것을,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 어머니 옆에서 잠드는 연기라도 할 것을. 뭐 그런 때늦은 후회를 한다. 내 어머니는 30년 동안 문방구점을 해서 시어머니와 실업자 남편을 돌보았고 세 자식을 키웠다. 세 자식이 다 돌아가면서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았다. 어머니가 한 고생은 한두 마디로 줄일 수 없다.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2007년에는 김천화장장 아래쪽에 축사가 있어서 거기서 냄새가 아주 강하게 풍겨왔다. 그런데 어머니의 시신이 화구의 불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화장장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어두컴컴한 날, 그 냄새에 축사의 분뇨 냄새가 섞여 고약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이었다.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병원 진단을 받고 4개월 만에 돌아가셨으니 마음의 준비고 뭐고 할 겨를이 없었다. 1시간이 채 못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해골바가지 하나 아래의 갈비뼈, 사지의 하얀 뼈였다. 지금은 분골도 벽체 안에서 다 이루어지는데 그때는 화장을 끝낸 유골을 식구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화장하는 이도 분쇄하는 이도 웬 초로의 사내였다. 그는 뼛가루를 뿌리지 않고 유골함에 넣어서 보관하려면 완전히 가루로 하는 것보단 푸석푸석할 정로도 하는 게 좋다고 말해주었다. 무표정했고 무심한 말투였지만 예의를 갖추었기에 나와 형은 그저 예, 예 했다.
나중에 화장터 앞마당 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분을 보았다. 양쪽 코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와 화장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내 어머니 시체 태우는 연기가 묘한 일체감을 이뤄 이 시를 쓰게 되었다. 내 몸 역시 일부는 화장장의 연기가 되고 일부는 가루가 될 날이 올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