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원경
권혁모
이승을 다 지우고 떠나는 날 언제일까
어기영차 불귀불귀 푸른 비가 내리면
망원경 뒷주머니에 숨겨 가면 안 될까
소백산 천문대에서 행성을 보았듯이
천상에서 비박하며 그리우면 어쩌지
감청색 지구라는 꽃밭 보름달로 뜨겠지
이제 ‘제임스 웹’이 우주 탄생을 찾는데
그까짓 살던 옛집 어딘들 못 찾으랴
첫눈이 수놓은 강변 자작나무 숲길도
곁에 있으면 좋겠네 먼저 떠나신 그대
망원경 꺼내 들고 내가 설명할 수 있다면
아득히 지상의 날을 함께 볼 수 있다면
―『월간문학』(2013년 1월호)에서

<해설>
인간은 누구나 수명이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생명현상이 멎는다. 100년 이상 사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극히 드문 예이다. 그런데 반짝반짝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별의 수명은 우리가 재기 어렵다. 크기도 재기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NASA의 허블망원경이었다. 우주 관측이 가능한 고성능 망원경인 허블은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서 한동안 우주 관측 활동을 하였다. 지금까지 주로 우주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이 허블이었다. 그런데 허블이 이제는 낡고 늙어 새로운 망원경을 개발했다는데 바로 ‘제임스 웹’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2021년 12월 25일에 발사되었다고 한다. 2022년 1~2월 목표했던 라그랑주 지점에 도착해 시험촬영을 시작했으며 2022년 7월 11~12일 첫 풀 컬러 은하 성단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고 한다. 시인은 우주의 무한과 인간의 유한을 대비시킨다. 아마도 제임스 웹에 대한 다음의 기사가 시심을 움직인 게 아닌가 한다.
미국 텍사스 대학 샤르드하 조기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이용해 84~110억 광년 떨어진 초기 은하를 관측했다. 이 시기는 우주 나이의 20~40% 정도 되는 시기로 우리 은하 같은 대형 나선은하는 드물었고 원시적인 소형 은하들이 합체를 반복하면서 성장하던 때였다.
우주도 역사가 있는 모양이다. 우주의 역사와 크기, 즉 시간과 공간을 생각하면 우리 인간이 좀 겸허해져야 하는데 오만하고 고집불통이다. 그래서 푸틴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 테고. 시인이 말한, ‘먼저 떠나신 그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이 시의 절창은 가운데 부분 “소백산 천문대에서 행성을 보았듯이/천상에서 비박하며 그리우면 어쩌지”이다. 천체망원경 덕에 우주의 역사와 넓이를 알게 된다고 한들 우리 인간은 짧게 살다 죽기 때문에 영생 혹은 영원을 꿈꾼다. 종교인이라면 영생을, 시인이라면 영원을 꿈꾼다. 그리고 3장 6구 4연의 시조 속에 우주를 담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시인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