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33) / 개와 인간이 차이가 있다? – 김동호의 ‘甲戌생 개띠 인생’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33) / 개와 인간이 차이가 있다? – 김동호의 ‘甲戌생 개띠 인생’
  • 이승하
  • 승인 2023.02.0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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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戌생 개띠 인생 

김동호

甲戌생 내 인생
나이 들면서 개를
많이 닮아가는 것 같다

열린 공간보다 닫힌 공간에 
더 관심이 간다

밝은 곳보다 후미진 곳에
더 호기가 발동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용변
아무 데서나 해소하지만

산야가 한 번도 나를
푸대접한 적이 없다

―『다시올문학』(2022년 겨울호)에서
 

 

사진=한송희 에디터

<해설>

1934년 충북 괴산 태생 김동호 시인의 신작이다. 아흔 연세인데 시가 아주 발랄하다. 나도 요크셔테리어를 한 마리 키우는데 완전 노견이다. 작년에 동물병원에 입원만 다섯 번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방구석이나 종이박스 안 같은 데 가서 가만히 있기를 좋아한다.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기보다는 콜콜 자고 있다. 심장도 폐도 안 좋아져 작년 가을부터는 산책도 안 시키고 있다. 아파할 때는 아 정말, 보기가 너무 딱하다.

이 시의 주제는 마지막 두 연에 있다. 사람이 개처럼 길 가다 아무 데나 용변을 보지는 않지만 노인이 되면 요실금 현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괄약근의 기능도 약해진다. 그런데 개가 주인과 함께 산책하다가 나무 밑에 가서 다리 하나를 들고 소변을 보든 길에서 요상한 자세를 취하고서 응가를 하든 산야는 그것을 언제나 받아들이는 존재였다. 개의 시체도 인간의 시신도 자연은 그저 수용하고 허용하리라.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땅을 대지모신(大地母神)이라고 일컬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상에는 온갖 동식물들이, 곤충과 세균들이 사는데 유독 인간이 하늘과 땅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한다. 개는 절대로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무시, 개소리, 개지랄, 개차반, 개수작, 개죽음, 개망나니……이라는 말을 하고 살지만 인간이 개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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