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옹!
문봄
우리 집 기계들은 일요일에도 쉴 줄 몰라
소파에서 감자처럼 눠 있는 삼촌만 보는 티비
지수 게임 등급 올리느라 거북 목이 된 컴퓨터
지우 만화 그리느라 손이 바쁜 태블릿
집사와 함께 막춤에 빠진 블루투스 이어폰
배달 엡 쿠폰으로 치킨 주문하는 스마트폰
기계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사람들 좀 봐!
이젠 인간이 기계의 반려동물 아니냐.
야옹!
―『동시마중』(2022년 9ㆍ10월호)

<해설>
동시의 통념을 깨고 있다. 동심, 아이들 세계, 자연과의 친화, 교육적 효과, 그 나이에 맞는 시어……, 이런 게 동시라면 이 작품은 동시가 아닐 것이다. 시의 전부가 역설이다. 삼촌이 티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티비가 삼촌을 보고 있다. 컴퓨터는 이 집의 아들 지수의 게임 등급을 올리느라 거북이 목이 되어 있다. 태블릿은 또 다른 아들 지우에게 만화를 그려주고 있다. 기계들이 다 바쁘다. ‘집사’는 아빠일 것이다. 고양이가 주인이고, 사람이 고양이 먹을 것과 화장실, 잠자리, 건강 상황 등을 챙기는 집사(執事) 일을 하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막춤을 아빠가 추고 있지만 문봄 시인은 이것 또한 역설적으로 “집사와 함께 막춤에 빠진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의인화한다. 스마트폰도 제가 사람인 양 배달 엡 쿠폰으로 치킨을 주문하고 있다.
엄마가 화자인 듯한데 살펴보니 세 식구가 다 기계와 같이 지내면서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기계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말이다. “이제 인간이 기계의 반려동물 아니냐.”는 실은 무시무시한 선언이다. 예전에는 만화영화 속의 마징가 제트나 로보트 태권브이를 인조인간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예 인공지능이 우리의 생활 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인간이 기계의 반려동물로서 야옹! 혹은 멍멍!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시인은 생각하였다. 『동시마중』에 실려 있으니 동시라고 생각하고 읽지만 이 작품에 숨어 있는 메시지는 뒷머리를 쭈뼛하게 한다. 현대인의 경우,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과 기계를 두드리고 만지는 시간과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길다. 우리가 차를 운전하고서 어디 갈 때도 기계 안에 앉아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도 그렇고. 인간과의 소통은 기계에 적은 문자로 이루어진다. 작품 자체는 유머가 넘쳐나지만 만만치 않은 주제의 무게가 이 동시를 읽고 그냥 웃어넘길 수 없게 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