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38) / 노동자는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 윤현순의 ‘사람은 꽃이다’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38) / 노동자는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 윤현순의 ‘사람은 꽃이다’
  • 이승하
  • 승인 2023.02.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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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람은 꽃이다
―해고 노동자 김진숙을 기억하며

윤현순

높은 곳은 권력의 자리라고 했다지
그러나

​억울하고 서러워 이 악물고 올라야 하는 아슬한 자리가 있지
벼랑 끝, 오랜 시간 그녀가 매달려 있던 곳

하늘과 가까운 곳은
사람과는 먼 곳
그래서 빈한한 자리
새들도 구름도 정처를 두지 않는 허방 같은

낮은 곳에는 밟히기 쉬운 것들이 있지
쉽게 외면당하는 것들이 있지
지금도 김진숙은 어디에나 있지

85호 타워크레인
309일간 고공에서 버티던 그녀
캄캄한 절망의 부리에 가슴 한쪽을 파 먹히고도
뚜벅뚜벅 다시 걸어 희망의 연대로 앞장서는

사람은 꽃이다 우리는 꽃이다 노동자는 꽃이다*

​이 세상 모든 꽃들은 낮은 곳을 딛고 피어나지
낮은 곳에 뿌리를 묻고 살아가지
낮은 곳이 가장 아름다운 성전이지

*기사에서 발췌.

―『대구경북작가 시선집』(2022)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김진숙 노동자의 인생은 그 자체가 감동적이다. 그이를 응원하며 쓴 이 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준다.

김진숙 노동자는 1981년 10월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하여 1986년 2월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 당선되었다. 노동조합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제23차 정기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선전물 150여 부를 동료 노동자와 제작ㆍ배포했다가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그 당시에 노동운동가는 공산주의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사측은 김진숙을 노조 활동이 불가능한 직업훈련소로 발령했고, 그이는 부당한 인사조치에 반발하다 그해 7월 징계 해고되었다. 복직 투쟁이 30년 넘게 진행된다. 2011년 11월 10일, 309일간의 크레인 고공농성을 해 노사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고 2019년 12월에는 영남대학교 의료원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연대하기 위한 도보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8년 암 판정 이후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그이는 2020년 4월 산업은행이 한진중공업을 매각한다고 발표하자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흔드는 매각을 비판하며 다시 복직투쟁을 했다. 2022년 2월 23일, 해고 후 복직 투쟁을 이어간 지 37년 만에 복직되었다. 이런 것 외에도 수많은 노동운동 현장에 그이는 서 있었다. 작은 키 마른 몸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샘솟는 것일까? 

시인은 4계절이 다 포함된 309일의 크레인 농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늘과 가까운 그곳의 더위와 추위를 도대체 어떻게 견뎠을까. “사람과는 먼 곳/그래서 빈한한 자리”인 거기는 “새들도 구름도 정처를 두지 않는 허방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억울하고 서러워 이 악물고 올라야 하는 아슬한 자리”였다. 희망버스가 갔던 곳이었고,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곳이었다. 그이는 “캄캄한 절망의 부리에 가슴 한쪽을 파 먹히고도/ 뚜벅뚜벅 다시 걸어 희망의 연대로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꽃이었다. 노동자의 꽃이었다. 

시인은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꽃들은 낮은 곳을 딛고” 피어난다고. 낮은 곳에 뿌리를 묻고 살아간다고, “낮은 곳이 가장 아름다운 성전”이라고. 김진숙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사람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꽃이고, 우리는 꽃이고, 노동자는 꽃이니까.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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