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맘
김명희
새벽에 깨어나 칭얼대는 아기 재우고
밤새워 앓던 고열 허리 질끈 동여매고
킥보드
쌩쌩 달려서
방화역 앞 닿아요
커다란 손 같은 낙엽, 마구 떨어진 길
발밑에서 바스락! 부서지는 현기증
잰걸음
보태질 때마다
격렬하게 꿈틀거려요
숨가쁘게 그렁대는 거센 바람 밀치면서
입김이 안경 가려도 팔다리 잘도 쫓아가요
지하철,
온몸 구겨넣고
어느새 졸아요
―『오지 못하게』(고요아침, 2021)에서

<해설>
아기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을 워킹맘이라고 한다. 새벽에 아기가 깨어나 배고프다 보챈 날에도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야 한다. 본인이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끝이 없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서 킥보드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쌩쌩 달려가는 워킹맘. 낙엽을 밟고 현기증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빈혈 때문인가 아침을 제대로 못 먹어 허기져서일까. 계절의 변화도 제대로 감지 못했기 때문일까. 워킹맘은 걸음도 잰걸음이다. 격렬하게 꿈틀대는 것의 정체가 궁금하다. 현기증이 심해진다는 뜻일까. 가을도 깊어가고 있고 팬데믹 사태도 끝나지 않아서 안경에 입김이 서린다. 팔다리가 몸을 좇아 부지런히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고 마침내 문 열린 지하철에 올라탄다. 온몸을 인파에 구겨 넣었는데 마침 자리가 있다. 꾸벅꾸벅 조는 워킹맘에게 축복을! 휴식을! 가사 부담을!
시조가 이런 현실세계를 다루니 아주 반갑다. 많은 독자가 갖고 있는 시조에 대한 안 좋은 고정관념이 시조는 소재가 고색창연하고 주제가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한 편의 시조가 이런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고 있다. 3장 6구가 닫혀 있는 공간이 아니라 활짝 열려 있는 총체적인 공간임을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워킹맘을 우리는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 우리 어머니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았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