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60) / 무심코 보내선 안 될 오늘 – 박두진의 ‘3월 1일의 하늘’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60) / 무심코 보내선 안 될 오늘 – 박두진의 ‘3월 1일의 하늘’
  • 이승하
  • 승인 2023.03.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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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3월 1일의 하늘
 

박두진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3월 하늘에 뜨거운 피 무늬가 어려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대지에 뜨거운 살과 피가 젖어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조국,
우리들의 겨레는 우리들의 겨레,
우리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이어야 함을 알았다.
아,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우리들의 가슴 깊이 터져 솟아나는,
우리들의 억눌림, 우리들의 비겁을
피로써 뚫고 일어서는,
절규하는 깃발의 뜨거운 몸짓을 알았다.
유관순 누나는 저 오를레앙 잔다르크의 살아서의 영예,
죽어서의 신비도 곁들이지 않은,
수수하고 다정한, 우리들의 누나,
흰옷 입은 소녀의 불멸의 순수,
아, 그 생명혼의 고갱이의 아름다운 불길의,
영웅도 신도 공주도 아니었던,
그대로의 우리 마음, 그대로의 우리 핏줄,
일체의 불의와 일체의 악을 치는,
민족애의 순수 절정, 조국애의 꽃넋이다.
아, 유관순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언제나 3월이면, 언제나 만세 때면,
잦아 있는 우리 피에 용솟음을 일으키는
유관순 우리 누나, 보고 싶은 우리 누나.
그 뜨거운 불의 마음 내 마음에 받고 싶고,
내 뜨거운 맘 그 맘속에 주고 싶은
유관순 누나로 하여 우리는 처음
저 아득한 3월의 고운 하늘
푸름 속에 펄럭이는 피깃발의 외침을 알았다.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1919년 3월 1일에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치고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삼일절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겠지만 오늘 꼭 같이 읽고 싶은 시가 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이 나라 방방곡곡 거리 곳곳에서 태극기를 흔들거나 주먹을 내지르며 외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람들은 10년 동안 계속된 일본의 탄압이 너무 심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거리거리로 뛰쳐나왔던 것이다.  

박두진 시인은 초기인 『청록집』의 시부터 유약하지 않았다. 자연 서정도 ‘질박’이 아니라 ‘박력’이었고, ‘관조’가 아니라 ‘참여’였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박두진(朴斗鎭, 1916~1998) 시인의 이름자가 頭자, 進자인 인상을 받았다. 특히 이 시는 박력이 넘치고 저항 의지가 뚜렷하다. ‘알았다’로 이어지는 종결어미가 독자의 가슴을 쾅쾅 친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 잘 나와 있는데, 유관순은 그때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 고작 17세였다. 3월 1일에 서명학ㆍ김복순ㆍ김희자ㆍ국현숙 등과 함께 ‘5인의 결사대’를 결성, 소복을 하고 기숙사를 빠져나와 대한문 앞에서 망곡(望哭)한 뒤 남대문으로 향하는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다. 일본 경찰에 곧 잡혔으나 워낙 많은 사람이 잡혀 들어가는 바람에 금방 석방되었다. 4월 1일, 고향인 병천 근처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것이 화근이었다. 태극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날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하여 19명이 시위 현장에서 숨졌다.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받았는데 함께 재판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등법원에 상고했지만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은 유관순은 상고하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를 기해 삼일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갖고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천여 명의 수감자들이 호응하여 만세 소리가 밖으로까지 퍼져나갔고, 그 함성에 형무소 주위로 인파가 몰려들어 전차 통행이 마비될 정도였다. 결국 인파를 흩트리기 위해 경찰 기마대가 출동하였다. 이 사건으로 심한 고문을 당해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유관순은 18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그 나이에 어찌 그런 용기와 대범함을 보여주었는지 시인은 감동해 마지않았던 것이고, 이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서 이 시를 썼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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