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63) / 국민이 좋아하는 정치인은 없는가 – 이기라의 ‘본질은 놔두고’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63) / 국민이 좋아하는 정치인은 없는가 – 이기라의 ‘본질은 놔두고’
  • 이승하
  • 승인 2023.03.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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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본질은 놔두고

이기라

1
참새 여럿 나무에서 쫑알쫑알 시끄럽다
큰 가지 앉지 않고 잔가지만 붙잡고서
이 아침 떠들어대는 저 속내를 모르겠다.

2
양지녘 개나리가 봄이 온 줄 착각일까
겨울의 중턱에서 노란 웃음 짓고 섰다
어쩌면 남보다 조금 틔어 보고 싶어설까.

3
여의도 개나리는 민생 법안 밀쳐둔 채
밥풀떼기 챙기려고 아옹다옹 설전이다
저러고 민초 섬긴다니 컹컹 개가 웃는다.

—시조집 『오시는 봄』(글나무, 2023)에서

<해설>

 시조시인들은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시조의 형식이 현실의 제 모순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조의 기원을 살펴보아도 엇시조나 사설시조에 비해 평시조는 현실비판의 기능이 약했다. 그런데 이 시조작품은 기존의 관례를 무시하고 여의도의 주인인 국회의원들을 마음껏 비판ㆍ풍자하고 있다. 

 제1수에 나오는 아침에 나무에서 쫑알쫑알 시끄럽게 지저귀는 참새 떼는 국회의원을 상징한다. 행동하고 실천하기보다는 말을 앞세우는 존재, 그 말도 잘 안 지키는 존재가 국회의원이다. 시인은 이 아침에 참새 떼가 떠들어대는 것을 듣고 저 속내를 모르겠다고 일갈한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봄이 온 줄 착각하고 노란 옷을 입고 있다. 당마다 고유 색깔을 정해 같은 색 점퍼를 입기도 하는데 노란색은 정의당이다. 이기라 시인이 정의당을 겨냥해서 쓴 것 같지는 않다. 계절 감각을 무시하고 “남보다 조금 틔어 보고 싶어” 안달하는 국회의원들이 얄밉다는 뜻이다.

 제3수에 가서는 계절을 분간 못하는 여의도 개나리들을 비판한다. “민생 법안 밀쳐둔 채/밥풀떼기 챙기려고 아옹다옹 설전이다”에 이르면 우회적인 접근법을 버리고 정면에서 친다. 정공법이고 단도직입적이다. “저러고 민초 섬긴다니 컹컹 개가 웃는다.”에 이르면 이 시조가 현실풍자, 인간풍자, 정치풍자를 노린 상소문 같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놀림감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들, 제발 정신 좀 차려야 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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