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67) / 몸의 장애와 마음의 장애 – 한영식의 ‘장애인에 관한 기록 1’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67) / 몸의 장애와 마음의 장애 – 한영식의 ‘장애인에 관한 기록 1’
  • 이민우
  • 승인 2023.03.0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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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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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장애인에 관한 기록 1
ㅡ지적 장애 30대 여성

한영식 

공원묘지 가는 길 옆
희망학교 식당 주방 일을 돕는다는
그녀는 모교를 자퇴했다고 말했지
병든 어머니를 위해서
돈이 필요해서
학생은 주방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자퇴를 선택한 그대
갑자기 어깨가 뭉치면 안 된다고
내 어깨를
매운 손가락으로 눌러주던 그대
결혼을 하고 싶어  저축을 하고 있다는 그대
그대는 장애인이 아니라
참 
고운 여자다

ㅡ『장애인복지관』(모악, 2023)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시에도 사실주의가 있다면 이 시야말로 기교를 배제한, 철저한 사실주의 시가 아닐까. 30대 여인이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둔 사연이 기구하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었으면 하는데 학교 식당 주방에서 보조 일을 하려 했을 때 ‘학생’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시인은 지적 장애가 있는 여인한테서 듣는다. 그녀의 소망은 거창한 것인가 소박한 것인가. 결혼하고 싶어서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아아, 이 소망이 꼭 이뤄지기를. 여인의 장애를 잘 이해해주고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줄 사람을 만나서. 
 
 이 시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든 부분은 이제 막 60줄에 접어든 시인에게 여인이 어깨가 뭉치면 안 된다고 안마를 해주는 장면이다. 그 손길은 천사의 손길이다. 자신이 장애가 있으면서도 남을 돕고자 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자비심이고 측은지심이다. 그리고 이타행이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 사람들이 저 30대 지적 장애 여인의 마음을 본받는다면 세상살이가 이렇게까지 각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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