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향異鄕
손인호
그 집의 아침을 좋아한다
그 집 아침의 작은 소란을
이른 아침부터 검은 돌이 땀 흘리기 시작하는 여름의 꼭대기에서
일으켜 내려다보면 가르마가 제멋대로 타진 그의 반려 잔디가 성미대로 조잘거리고 있고
손가락만 한 달팽이가, 달팽이는, 달팽이
빈 뒷집에서는 대나무 숲이 저들끼리 부벼대고
코뿔소 같은 멀구슬나무에서는 새들의 비명 소리
토란은 변비처럼 굵어지고
그리고 콩나물이 끓고 있는 부엌
체체체체 파 썰리는 도마 소리
젬배는 반가부좌로 장단을 맞추고
웃통을 깐 형은 마른 가래를 연신 뱉어내고
소년 같은 형수가 사부작 햇매실청을 한 통 싸고
말린 햇고사리 한 봉지도
아, 나의 친정
그 집 아침의 마른벼락 같은 평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ㅡ『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글상걸상, 2023)에서

<해설>
사람들에게는 타향살이가 무척 서럽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가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외롭고, 외로우니까 자연히 서럽고, 서러우니까 고향에 다시 가고 싶다는 수구초심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가서 하룻밤 자고 났을 때 그 아침이 아주 행복할 때가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아는 형 집에서 하루 유숙하게 되었다. 그 집의 아침을 좋아하는 이유가 시의 전반부에 죽 전개된다. 형의 집은 숲 근처에 있나 보다. 자연이 들려주는 작은 소란을 좋아하는 시적 화자는 이윽고 부엌에서 나는 콩나물 끓는 소리와 파 썰리는 도마 소리를 듣는다. 아프리카 드럼 북인 젬배는 반가부좌 자세로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춘다. “소년 같은 형수”가 화자에게 주려고 햇매실청 한 통과 말린 햇고사리 한 봉지를 챙긴다. 인정과 안정이 있는 형의 집은 화자에게 “마른벼락 같은 평화”를 제공하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타향이지만 고향 같은 곳, 고향만큼이나 따뜻한 그곳에서 나도 며칠 지내다 오고 싶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