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2) / 시의 최고봉은 역시 당시다 – 김달진의 ‘당시를 읽으며’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2) / 시의 최고봉은 역시 당시다 – 김달진의 ‘당시를 읽으며’
  • 이승하
  • 승인 2023.03.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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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당시(唐詩)를 읽으며 

김달진 


어젯밤
꽃 떨어지는 꿈
꾸었으니, 이제
봄이 바야흐로 지나가려 한다.

강물은 봄을 따라
말없이 흘러가고
하늘의 달마저 창연히
서쪽으로 기운다.

갈 길은 아득한데
이 지는 달빛을
밟으며 몇 사람이나
집으로 돌아갈까.

나는 그저
멀리 강 언덕에 늘어선
나무들만
무연히 바라본다.

ㅡ『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민음사, 1990)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김달진(1907〜1989) 시인이 이 시를 쓴 이유를 알 것 같다. 한학자이기도 한 김달진 시인은 『唐詩全書』를 1987년에 민음사에서 펴냈는데, 132명 시인의 700여 편을 번역하면서 참고한 책이 『全唐詩』였다. 청나라 강희제의 명으로 학자들 수십 명이 달라붙어 당나라 때의 수많은 시인 중 그중 뛰어난 2,200여 명 시인의 4만 8,900여 수의 시를 실은 900권짜리 전집을 펴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국가사업이었다. 성군으로 이름 높은 강희제가 보통 지도자가 아니었음을 이 한 가지가 증명한다. 문을 숭상하고 시를 아낀 사람이 강희제였다. 김달진은 『全唐詩』 외에도 『古唐詩合解』와 『全唐詩三百首欣賞』을 참고하여 『唐詩全書』를 펴냈다. 내 애독서 중에는 김달진 시인이 역해(譯解)한 『한국漢詩』도 있다. 당시(唐詩)든 우리 한시든 김달진 시인 자신이 번역하면서 심취하고 감탄했기에 이 시를 썼던 것이리라.

당시(唐詩)의 큰 주제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이 자연의 이법을 거역하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봄이 가면 꽃이 지고, 달이 차면 기울게 마련이다. 강물은 계곡물과 달리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유유자적’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집으로 돌아갈까”를 ‘일가를 이룬다’로 이해한다. 시인 중 일가를 이룬 사람은 또 몇 명인가. 당나라 때의 수많은 시인 중 『全唐詩』에 이름이 올려진 시인이 2,200명이었다. 『唐詩全書』에 올려진 사람은 132명이었다. 그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당시4걸’은 이백ㆍ두보ㆍ왕유ㆍ이하다. 김달진 시인은 멀리 강 언덕에 늘어선 나무들만 무연히 바라본다. 나는 작고 그들은 크다. 

김달진 시인이 번역한 이하의 시 「장진주(將進酒)」의 한 구절을 이 봄에 읊조린다. “하물며 이 봄도/해가 저물려 하고/어지러이 지는 복사꽃은/붉은 빗발 같음이라//권하노니 그대여/종일토록 마시고 한껏 취하자/유령(劉伶, 죽림칠현의 한 사람)의 무덤에까지/술은 가지 않느니.” 이렇게 술을 권했던 이하도 스물일곱 나이에 죽었고 김달진 시인이 작고한 지도 34년이 되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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