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4) / 미혼모에게 따뜻한 위로를 – 천양희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4) / 미혼모에게 따뜻한 위로를 – 천양희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 이승하
  • 승인 2023.03.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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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어느 미혼모의 질문

천양희 


슬픔 아픔 고픔
이따위 단어들은 
왜 늘 현재진행형일까요

어제 그날 옛사랑
이따위 단어들은
왜 모두 과거완료형일까요

구름 여울 바람
이따위 단어들은
왜 다들 정처가 없는 것일까요

울음바다 눈물바람
이따위 단어들은
왜 또 과장되는 것일까요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네요
저 아이는 
제 불행을 아는 듯
한번 울면 오래가요
저것이 저 아이의 미래형일까요

ㅡ『지독히 다행한』(창비, 2021)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결혼하기 전에 아기를 낳은 여성의 가슴 아픈 사연을 최근에 읽었다.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용된 이들만이 작품 발표를 할 수 있는 문예지 『새길』의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였다. 29세의 그 여성은 구치소에서 딸을 낳았고, 아기는 곧바로 외할머니가 데려가 키우게 되었다. 딸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으로 쓴 수필에서 그이는 “용서해줘 우리 샛별아. 엄마의 심장이자 보석인 샛별아 사랑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나도 고마워.”라고 썼다. 하지만 형량이 꽤 되는지 초등학교 입학식 때 가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썼다. 

 시의 화자는 그 재소자와는 달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 슬픔과 아픔이 고픔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이 경우 고통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여성이다. 임신한 것도 여성이고 회임에서 출산까지, 출산 이후에도 책임은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더욱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열 달 동안 품었던 새 생명체와 헤어질지도 모른다. 마지막 연이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축복받는 탄생이어야 할 텐데, 참으로 난처한 탄생이다. 아기가 울 때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기쁜 마음으로 달래주어야 할 텐데, 아기가 자신의 운명을 알기라도 하듯이 오래 운다. 그 아이의 앞날에 어떤 운명이 펼쳐질까?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미군이 주둔한 이래 이 땅에서 태어난 사생아들의 운명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런데 천양희 시인이 안타까워하고 있듯이 지금 이 땅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엄마가 되는 이들의 수가 아주 많다. 10대 미혼모도 많다. 사랑의 결실이어야 할 아기들이 태어날 때부터 천덕꾸러기가 되면 안 될 텐데, 시인과 함께 걱정하게 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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