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5) / 스님도 근원적인 슬픔이 있다 – 청화의 ‘알 수 없는 울음’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5) / 스님도 근원적인 슬픔이 있다 – 청화의 ‘알 수 없는 울음’
  • 이승하
  • 승인 2023.03.16 04:00
  • 댓글 0
  • 조회수 5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알 수 없는 울음

청화  

혼자 염불하는 밤
나는 나의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깊은 물에 가라앉는 돌처럼.

얼마를 내려가다가
무엇을 만난 것인지
뜨거운 덩어리 울컥
가슴에 치밀어 오르더니
눈물이, 이 어인 눈물이……

꼭 한 번은 울어야 할
어느 생에 나도 모르게 맺힌
주먹만 한 설움을 가진 내가
거기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가

짐을 부린 듯
그 알 수 없는 울음을 울고
법당을 나올 때
나의 마음에는 
처음 보는 별들이 반짝거렸다. 

ㅡ『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불교문예, 2021)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우리는 연세 지긋한 스님을 도통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불교계에서도 존경을 받는 청화 스님인데 고뇌가 보통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염불하다가 만난 자기 자신의 깊은 내면세계는 법열의 세계가 아니다. 신도들 앞에서는 평온한 얼굴로 설법하고 염불하지만 내가 만난 나는 펑펑 울고 있다. “뜨거운 덩어리 울컥/가슴에 치밀어 오르더니” 결국 울고 만다. “주먹만 한 설움을 가진 내가” 울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짐작하건대 부모 형제와 일찍 헤어졌고, 현재도 아내와 자식도 없기에 느끼는 고독감 때문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인간 생로병사의 근원적인 고뇌에서 완전히 해탈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뿐만 아니라 신부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서의 고독감을 달래줄 수 있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종신 서원한 이들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고독일 것이다. 그런데 한참 울고 나니까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꼈던가 보다. 처음 보는 별들이 마음속에서 반짝거렸다고 하니까. 고승이라고 하여 도통한 도인이 아니라 참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서 나는 청화 스님을 뵌 적이 없지만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