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7) / 아버지는 세상의 소금이었다 – 김나비의 ‘소금꽃 피는 소리’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7) / 아버지는 세상의 소금이었다 – 김나비의 ‘소금꽃 피는 소리’
  • 이승하
  • 승인 2023.03.18 04:05
  • 댓글 0
  • 조회수 239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소금꽃 피는 소리

김나비


암 병동 침대 위에 소금 한 알 누워있다
땡볕과 모진 해풍에 온몸을 내어준 채
한평생 바닥 뒹굴다 알갱이로 남아있는,

풍랑에 휩쓸리고 암초에 부딪혀도
식솔들 떠올리며 굽은 등 곧추세우고
늑골에 감추어 놓은 하얀 꽃 밀어 올리던,

밀물 따라 차오르던 비릿한 인고의 맛
짭조름하고 씁쓰름하고 맵싸한 것이 생이라며
저무는 노을을 보며 굳은 몸 말리는 아버지,

대파 쥐던 단단한 팔에 링거줄을 매단 채
말기 암 침상에서 뒤척이는 나의 소금 
눈부신 바다 냄새가 환하게 피어나는,

ㅡ『정형시학』(2023년 봄호)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아버지는 한평생 어부여서 바다가 일터였다. “땡볕과 모진 해풍에 육신을 내어준 채” “한평생 바닥 뒹굴다 (소금) 알갱이”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암 병동 침대 위에” 누워있다. 아버지의 한평생은 한편으로는 풍랑에 휩쓸리고 암초에 부딪히는 것이었다. “짭조름하고 씁쓰름하고 맵싸한 것”이 아버지의 생이었다. 소금을 긁을 때 사용하는 도구인 대파를 쥐고 있던 팔이 야위었는데, 이제 그 팔에 링거줄을 매달고 있다. 말기 암 병실에서 뒤척이고 있지만 나의 소금 아버지는 “눈부신 바다 냄새가 환하게” 지금 피어나게 하고 있다. 아버지의 지난 삶이 애처롭기 이를 데 없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다. 아버지는 온몸으로 바다와 싸우면서, 바다에 의지하면서 식솔을 먹여 살렸다. 그 아버지를 기리는 이 시는 어찌 보면 이 세상 모든 아버지에 대한 송가이다. 어머니를 기리는 시는 차고 넘치는데 아버지의 초상을 이렇게 아름답고도 숭고하게 그린 시는 그동안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등판에 핀 소금꽃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제목이 ‘소리’이니 소리에 대한 묘사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시는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형식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4개의 연이 모두 쉼표로 끝나고 있다. 그리고 문장이 모두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암 병동 침대 위에 소금 한 알 누워있다”가 첫 문장이고 “비릿한 인고의 맛”이 두 번째 문장의 끝부분이다. 연이 4개로 나뉘어 있지만 실은 쉼표와 함께 다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분명히 3장 6구로 된 단형시조 4수를 이어놓은 시조인데 이와 같이 현대적인 언어 감각으로 풀어냄으로써 형식적인 면에서도 세련미를 드높인 수작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