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돌리기 위하여
조오현
땅이 걸어서 무엇을 심어도 좋을 밭
쟁기로 갈아엎고 고랑을 만들고 있다
나처럼 한물간 넝쿨은 걷어내고
이제는 정치판도
갈아엎어야
숨돌리기 위하여
ㅡ『아득한 성자』(시학, 2007)에서

<해설>
3월 20일, 바야흐로 모종을 할 만한 때이다. 요즈음 들로 나가보면 쟁기로 땅을 갈아엎고 고랑을 만들고 있는 어르신네를 뵐 수 있다. 땅이 걸다면(fertile) 구태여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므로 쟁기질을 한 번은 해야 한다. 요즈음엔 사람이 소한테 이랴 이랴 외치면서 쟁기질을 하지 않고 밭갈이 전동 쟁기 기계에 앉아서 운전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봄 풍경을 그리려 이 시를 쓴 것이 아니다. 정치하는 자들이 눈꼴셔서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것이 이 시의 주된 내용이다. 봄이 되면 농부들이 쟁기질을 하면서 흙을 갈아엎는데 그런 식으로 갈아엎어야 숨을 좀 돌릴 수 있겠다고 한탄하면서 쓴 시다.
산간 절간 속의 스님이라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모를 리 없었다. 오현스님(1932〜2018)은 살아생전에 큰 포용력으로 사람을 품었고 문학을 선양했고 불법을 전했다. 그런데 그분도 영 용납이 안 되는 세계가 있었으니 이른바 정치판이었다. 이건 뭐 엉망진창에 오리무중에 뒤죽박죽이 아닌가. 이판사판에 개판에 아사리판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신 오현스님이 그리운 날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