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81) / 존경심이 가는 안내견 – 최진자의 ‘안내견’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81) / 존경심이 가는 안내견 – 최진자의 ‘안내견’
  • 이승하
  • 승인 2023.03.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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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안내견 

최진자


계란만 한 근육이 물결치는 엉덩이
휘장을 가슴에 두른 사관생도 같은
주위가 소란스러워도 동요됨 없이
온갖 소음에도 고요한 산길을 걷듯

세 발자국 떼어놓고 뒤를 돌아보는 여유로움
등의 우람한 곡선은 위엄을 업고
수십 년의 수도생활을 한 성자인 양
얼굴은 부처님의 미소가 자리를 잡고

소리 나지 않는 발소리 대신
몸의 출렁임으로 전달하는
주인은 볼 수 없는 멋진 보디가드
몸으로 느껴지는 안도감

볼 수 있는 자보다 더 잘 찾을 수 있게
딱 세 발 앞서서
눈뜬 자보다 더 잘 갈 수 있게
부모 같은 심정으로

절로 눈길이 가는
자꾸만 마음이 가는
악수하고픈 친근감
인간 경계에 있는 안내견

ㅡ『집으로 오는 그림자』(깊은샘, 2023)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안내견을 만날 때가 있다. 앞을 못 보는 주인이 끈을 쥐고 있고 안내견은 짖지도 않고서 주인을 앞장서 안내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고 전동열차에 오른다. 열차가 달리는 동안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내릴 때가 되었나 보다 하고는 일어나 열차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콧잔등이 시큰해질 정도다. 안내견은 정말 착하게 생겼고 순하게 생겼다. 

주위가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동요됨이 없이 은인자중, 침착한 것이 수십 년 수도생활을 한 성자 같다. “세 발자국 떼어놓고 뒤를 돌아보는 여유로움”에서 시인은 그 안내견의 “부모 같은 심정”을 느꼈나 보다. 개는 분명히 짐승인데 시인이 보건대 성자 같고 부모 같아서 “인간 경계에 있는 안내견”이다. 내가 보건대 정직하고 성실하고 침착한 것이 사람보다 낫다. 

이 시의 가장 큰 장점은 시인이 안내견의 행동을 아주 치밀하게 관찰하여 꼼꼼하게 묘사한 데 있다. 시인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가 관찰력임을 이 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유심히 보는 자는 시인이 되고 무심히 봐넘기는 자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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