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88) / 팬데믹이 끝난 게 아니지요 – 조광자의 ‘우리 집은 자가 격리 중입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88) / 팬데믹이 끝난 게 아니지요 – 조광자의 ‘우리 집은 자가 격리 중입니다’
  • 이승하
  • 승인 2023.03.29 04:00
  • 댓글 1
  • 조회수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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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우리 집은 자가 격리 중입니다

조광자


누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재앙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고 하네
한 손에는 왕관(corona)을 들고
걸음을 멈추고
가족의 옆자리를 느껴보라고 하네
벽에 왕관을 걸어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네

마음은 바람과 같아서 밖으로만 흐르고
서로의 입을 막아 버렸네
작은 미물의 바이러스가 우리를 갈라놓은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하늘을 올려다보고 발아래를 내려다봐도
내가 세워 놓은 서푼 어치의 콧대는 허물어지지 않네

여권이 없어도 국경을 오가는 코로나
맹독성의 주장이 언성을 높이네

너무 오래 같이 살아온 탓일까
끝없이 반복되는 회로의 팬데믹
당신은 안방으로 나는 거실로

오늘 이 순간에도
당신이 아파서 나도 아프네

ㅡ 『닿을 수 없는 슬픔에게』(문학의전당, 2022)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3월 25일자 언론 보도를 보았다.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6일째인 25일, 전국에서 1만여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448명 늘어 누적 3천75만9천895명이 됐다고 밝혔다. 이날 신규 확진자 수는 전날(1만283명)보다 165명 늘었다. 1주일 전인 지난 18일(9천259명)과 비교하면 1천189명 늘어났다. 전날 사망자는 6명으로 누적 사망자는 3만4천217명이다.” 방심이 화를 불러오고 있는 게 아닐까. 연말까지 4만 명을 채울지도 모른다. 

 이 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쓴 것이다. 지난 3년여 동안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자가 격리의 처지가 되었던 사람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 집을 교도소로 삼고서 열흘이고 보름이고 격리되어 있다가 나온 사람들은 감옥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하고 석방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자가 격리 중인 시적 화자는 이렇게 묻는다. “작은 미물의 바이러스가 우리를 갈라놓은/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하고. 시인의 말이 재미있다. 가족의 옆구리를 이번 기회에 확인해보라고?

 천주교의 수도사들은 침묵 피정을 반드시 하고 불가의 스님들은 동안거와 하안거를 반드시 한다. 입을 봉하고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느님과 부처님을 마음으로 만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런 거룩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2020년과 2021년 두 해 동안은 우리에게 침묵 피정을 하도록 명했다. 그래서 그때는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농도가 확실히 심하지 않았다. 음주운전 사고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지금 경고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훨씬 강한 녀석이 나타날 것이라고. 그때가 되면 당신은 안방으로 가고 나는 거실로 가는 격리가 아니라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격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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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 2023-03-31 19:06:41
한국의 시는 동시수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