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90) / 사형수 유영철에게 쓴 편지 – 이승하의 ‘인간의 얼굴’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90) / 사형수 유영철에게 쓴 편지 – 이승하의 ‘인간의 얼굴’
  • 이승하
  • 승인 2023.03.31 04:00
  • 댓글 0
  • 조회수 5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인간의 얼굴 
ㅡ사형수 유영철에게

이승하


어느 누군들 시한부 목숨이 아니리
고고의 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카운트다운
신이 눈을 깜박이는 동안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는
우리는 모두 유한자

잘 주무셨는가? 그대의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때 ‘수’를 몇 개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형수, 목숨이 째깍째깍 연장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부인하고 싶었다고?
중1 때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되어
병원에 40일간 누워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전과기록, 경찰조사서에
‘행방불명’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고통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일찌감치 이혼하여 네 자식 혼자 키우는데
장남은 행방불명
차남은 간질 앓다가 자살
삼남은 텔레비전에 매일 나오는 연쇄살인범
늘 배고픈 막내 미옥이

“처음 징역 살고 나왔을 때
사내 녀석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괜찮다고 하셨죠.
이 세상에 나한테 야단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어머니는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내버려뒀어요.”
인간의 얼굴을 하고서 너는
거기에서까지 엄마를 원망하는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는가 진심으로 연민하는 마음으로

ㅡ『감시와 처벌의 나날』(실천문학사, 2016)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10여 년 전, 처음 교도소장의 요청을 받고서 간 곳이 안양교도소였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하필이면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잠을 거의 한숨도 못 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교도소를 방문하였다. 교도관이 스마트폰을 달라고 했고 주민등록증도 가져갔다. 유영철은 시 치료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열흘째 되는 1997년 12월 30일에 23명의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한 이후 지금까지 25년여 동안 단 한 명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무기징역을 살리고 있다. 만에 하나 다시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가 유영철일 것이다. 27명을 살해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월간조선의 객원기자 이은영 씨가 그를 오래 취재했고 그 과정에서 100여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중 32통을 묶여 ‘살인 중독’이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그래서 나도 이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경기도 권성훈 교수는 유영철과 내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두 사람을 비교하여 『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내게 그런 폭력적 성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 비슷한 것들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영철은 자기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호된 꾸지람을 정말 듣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이것도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고 다 전과자가 되는가? 그의 의지 박약과 반사회적 성격이 사이코패스가 되게 했고 살인 중독까지 갔다. 그곳에서라도 반성을 하면 좋겠다. 근년에는 그래도 거기서 사고를 안 쳐서 그나마 다행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