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101) / 야크는 성인 같다 – 최영규의 ‘야크’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101) / 야크는 성인 같다 – 최영규의 ‘야크’
  • 이승하
  • 승인 2023.04.1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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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야크 

최영규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을
저 다리, 저 무릎

무너지며 흘러내리는
파석(破石)의 모레인(moraine) 지대
깎아지른 급사면에
사선을 그으며 전진하는 야크

삶과 죽음을 함께 담보하는
고산의 영역과
어리석은 외눈박이 인간들을 연결하는
특별한 짐꾼
저 특별한 구도자

가끔 하늘을 볼 뿐
가끔 커다란 머리를 흔들어 털 뿐
할 말은 있지만
어금니를 물어 입을 닫은
묵언의 정진

그들의 주먹만 한 까만 눈동자에 담겨 있는
알 수 없는 경계 밖 그곳으로
외눈박이 인간들을  인도해 간다

ㅡ『설산 아래에 서서』(리토피아, 2023)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소와 비슷하게 생긴 야크라는 동물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과천대공원 동물원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산악인인 최영규 시인은 야크와 함께했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을 것이다. 티베트와 히말라야의 높은 산을 다수 등반했던 시인은 야크에게 짐을 지워 카라반에 나서곤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야크 또한 낙타나 조랑말처럼 등에 짐을 잔뜩 올려놓아도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사진을 보면 야크가 정말 순하게 생겼다. 

 최영규 시인은 야크를 특별한 짐꾼, 혹은 특별한 구도자로 보았다. 야크는 묵언 정진하는 수도사나 스님을 방불케 한다.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끈을 당기면 야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눈길이나 진흙길이나 조용히 걷는다. 시인이 보건대 인간은 어리석은 외눈박이들이다. ‘오만과 편견’을 갖고 있고 ‘권력과 영광’을 추구한다. 욕심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을 자기 밑에 두려고 한다. 눈앞의 대상이나 사물을 줄곧 삐딱하게 본다. 

 야크가 이런 인간을 인도해 간다. 정직하고 성실한 그들! 가끔 하늘을 본다는 것은 야크가 자연의 일부임을 뜻하는 것이고, 가끔 커다란 머리를 흔들어 털 뿐이란 것은 무념무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랴. 야크에게 보통 지우는 짐의 무게는 30kg 이상이라고 한다. 풀이나 뜯어 먹는 순한 포유류다. 시인은 야크에게서 한 수 배우고 하산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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