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126)/ 나의 신체를 다 포기한다? – 이소영의 「신체 포기각서」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126)/ 나의 신체를 다 포기한다? – 이소영의 「신체 포기각서」
  • 이승하
  • 승인 2023.05.0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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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신체 포기각서  

이소영 


대출받은 사랑을 기한 내 변제하지 못해
계약서에 사인한 대로 오늘 이 시각부터
신체에 대한 모든 권리를 당신에게 양도합니다

남은 기간 두 눈은 당신만을 바라보고
양손은 언제나 당신 손만 잡을 것이며
심장은 늘 당신만을 향해 뛸 것을 약속합니다

ㅡ『시조21』(2023년 봄호)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신체 포기각서는 아무리 자발적으로 동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법률상 무효라고 한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본인의 장기를 자발적으로 파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장기를 강제적으로 가져와서 파는 건 더 엄하게 처벌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는 그런 살벌한 이야기가 아니고 ‘대출받은 사랑’을 기한 내 변제하지 못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사랑에도 종류가 있는 것일까? 부모의 자식 사랑, 자식의 부모 사랑, 형제간의 사랑, 동료애, 전우애 등도 있겠지만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성 간의 사랑이다. 남과 여가 사랑해야지 임신을 하고 2세가 탄생한다. 이 시조는 제목이 살벌하지만 내용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의 심장 박동이 멈출 때까지 두 눈으로 당신만을 바라보겠습니다, 당신 손만 잡겠습니다. 그리고 내 심장은 당신만을 향해 뛸 것을 약속합니다. 

 마치 성혼선언문을 주례가 낭독하고 나서 남편 될 이에게 묻자 ‘네!’ 하고 대답하는 식이다. 얼마나 좋으랴, 죽을 때까지 사랑할 사람이 있다면.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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