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님은
양명문
어느 초가을 저녁이었지요
당신을 모시고 저는
기자묘 솔밭을 누비며
을밀대로 올라가서는
영명사(永明寺)로 내려가
부벽루에서 한참을 쉬시면서
당신께선 한숨을 쉬셨지요
분단된 내 나라 걱정을 하시면서
득월루(得月樓), 전금문(轉錦門)을 지나
우리 모자는 거닐었지요
청류벽 아래 강변길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며
어머님, 구십을 바라보는 어머님은
지금, 어디를 누구와 걷고 계십니까.
ㅡ『망향의 시』(대한적십자사, 1979)에서

<해설>
1913년 평양에서 태어난 양명문 시인은 일본 도쿄센슈대학[東京專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 고향 평양에 있다가 1·4후퇴 때 월남하였다. 한겨울이라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올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해방기 때 평양의 일곱 군데 경치 좋은 곳을 어머니와 함께 여행한 것이 일평생 잊히지 않는, 가장 값진 여행이었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다. 양명문 시인이 1985년에 사망할 때까지 어버이날을 어떤 심정으로 보냈는지 이 시 한 편이 잘 말해주고 있다. 30년 세월 동안 오매불망 잊은 적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과 음성이었으리라. 생사 여부를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 계신다면 아흔이 다 되어갈 연세이거니 생각하면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평양시와 교외에 경치 좋은 곳이 많은가 보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북한의 김정은은 지금 저럴 때가 아니다. 북한 주민의 민생고를 해결해야 되고,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이산가족의 마지막 상봉을 주선해야 한다.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북한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뵙고 싶어하는 이 땅의 호호백발 자식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자신은 어디에건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 무슨 죄업의 나날인가.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