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29)/ 저 나무들의 지혜–박병원의 「떨켜」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29)/ 저 나무들의 지혜–박병원의 「떨켜」
  • 이승하
  • 승인 2023.05.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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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떨켜

박병원


나무는 알고 있었나 보다
잎새 짙푸르던 그때 이미
메마른 겨울 혹한이 오면 
몸 안에 지닌 물은 가두고
수분을 헤프게 빨아들이는 일은
떨궈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가지에서 잎자루로 이어지는
통로에 켜켜이 쌓인 부름켜
몸 안에 빠져나가는 수분을 막으며
알록달록 치장하는 이파리
팽팽하게 날을 세우며
한껏 제 세상 뽐내다가도
마음 풀어 스스로 추락하는
이렇듯 미련 없이 떨어져 나가는
저 아름다운 이별의 몸가짐

헤어지며 입은 상처 난 자리
바이러스 차단용 마스크는 쓰되
철철이 겹쳐 입은 옷 벗어 던진 알몸
겨울 볕 쬐며 엄동을 나는 지혜
너야말로 
내 삶 이끄는 화두가 된다

ㅡ다시올문학회, 『반음, 올려 읽는 골목』(2021)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국어사전을 보니 떨켜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와 있다ㅡ“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 나무는 그 세포층을 굳게 해 수분이 통하지 않게 하는데 그럼 이 부분에서 잎이 떨어지고, 잎 떨어진 자리가 보호된다고 한다. 즉, 나무가 겨울을 잘 나기 위해, 또 자신을 잘 보호하기 위해, 이와 같이 떨켜를 통해 자구책을 구하는 것이다.

 시인은 나무가 저렇게 떨켜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찾아가는 것이 신기하였다. 나무도 저렇게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우리 인간은? 이 질문이 시의 주제가 된다. 그래서 “너야말로/ 내 삶 이끄는 화두가 된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마스크만 쓰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퇴치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바이러스의 미세함을 생각해보면 마스크는 사실 미봉책이다. 보균자가 지하철에서 기침을 한 번 크게 하면 바이러스가 최소 10명에게는 전파될 것이다. 우리는 나무들의 자기희생의 정신, 즉 살신성인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이제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데 그럼 코로나 사태가 다 끝난 것인가?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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