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말하기 전에
전지우
이왕이면 강화 대선리 수평선보다 더 멀리 갔으면 좋겠네
몸 그림자로 와서 감춘 것도 잃은 것도 없으니
내 쪽으로 더 이상 얼굴을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아무도 모를 바다 언덕에서
진실된 것도 정의로운 것도 잊었으면 좋겠네
하관이라는 말과
이어 붙일 시간과
이어 붙여도 더 이상 붙여지지 않는 세계만 있으니
이건 또 하나의 이별 방식이겠네
당신은 솔직함마저 버릴 데가 없는 사람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은 사람
침묵이 긴말이라면서 먼길을 내다본 사람
지금은 어딘가로 떠나야 하므로
나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네
긴말하기 전에, 말하지 않으면
땅의 문이 열린 것도 모르는 사람아
입을 여는 일이
왜 그렇게 멀고 힘든지
내가 쓴 편지엔 바람 소리나 가득했으면 좋겠네
귀를 문풍지처럼 열어놓고
나를 놓고 떠난 죄, 종일 귀나 씻었으면 좋겠네
ㅡ『당신이라는 별자리 하나』(천년의시작, 2023)에서

<해설>
예전에는 종종 하관하는 것을 보았다. 내 부모님의 경우, 화장터에서 받아온 유골함을 관에 넣고 땅에 묻었다. 제일 근년에는 정진규 시인의 시신을 하관하는 것을 보았다. 2017년이었다. 전지우 시인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다 사람 묻는 광경을 죽 지켜보면서 사자와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그대여, “진실된 것도 정의로운 것도 잊었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한다.
가족일까 친구일까 친지일까. 아무튼 지인과 함께했던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당신은 솔직함마저 버릴 데가 없는 사람/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은 사람/침묵이 긴말이라면서 먼길을 내다본 사람”이었다고 간주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죽으면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물로 간주될까. 평가될까. 그 녀석 잘 죽었지 뭐.
타인과의 관계는 대화를 통해 이뤄진다. 소통, 교감, 우정, 애정 등이 다 말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긴말하기 전에 이심전심으로 뜻이 통하는 경우도 있고 같이 살아도 영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부모와 자식이 소통이 잘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사랑 고백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는데 상대방을 저승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가 아내나 남편일 경우도 있고 연인일 경우도 있다. 아, 이 말을 했어야 하는데…….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그때 정말 고마웠다고. 너를 정말 사랑했다고.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