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
이승하
사는 것이 참 더럽고 구차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날이 이어지면
그대
그때를 떠올려보는 게 어떨까요
어버이날 엄마 아빠 가슴에 카네이션 달아드리며
사랑해요…… 쑥스럽게 말했던 때를
우울의 늪에 빠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을 때
그대
사랑을 고백했을 때를 떠올려보는 게 어떨까요
값싼 선물 하나 마련해 내밀며
사랑해…… 주뼛주뼛 말했던 때를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을 주신 그 많은 사람들
그대
두 사람이 사랑해 살 섞어 태어났잖아요
사랑의 결정체가 그대인 걸요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봐요
지금 바로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거예요
그럼 된 거죠 살 이유가 있는 거죠
내가 나를 사랑해 죽일 수도 있지만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
한 달에 천 명 이상
해마다 1만3천 명 이상*
내가 나를 오래 사랑할 수 있었는데
* 대한민국 자살자의 수. 2008년 1만 3,670명, 2019년 1만 3,799명, 2020명 1만 3,195명, 2021년 1만 3,352명.
ㅡ『학산문학』(2023년 봄호)에서

<해설>
매년 자살자가 1만 3,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재작년의 경우 한 달에 1,000명 이상이, 매일 36.6명이 자살했다. 푸시킨의 시 중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슬픈 날은 참고 견뎌라/즐거운 날이 오고 말리니”로 시작되는 것이 있다. 자살하려는 자의 머리맡에 이 시가 놓여 있었더라면? 한 사람이라도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참으로 답답하여 써본 시이다. 우리는 자신을 자중자애해야 한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효경>에 나오는 유명한 말,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을 한번 되뇌어봐도 좋겠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국내 자살자의 수를 줄이겠다고 매년 대책회의를 하지만 신통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인데 무슨 대책이 있으랴.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던 날이나 사랑 고백을 했던 날에 대한 회상이 자살 기도를 멈추게 할 리는 없다. 하지만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만 있다면 자살할 이유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결국 사람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사회관계망의 확충이 필요하다. 건강검진 항목에 우울증, 조울증, 자폐증 조사가 추가되기 바란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