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34)/ 곤충 이름 외우기의 어려움–김풀의 「소잘땡」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34)/ 곤충 이름 외우기의 어려움–김풀의 「소잘땡」
  • 이승하
  • 승인 2023.05.1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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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소잘땡

김풀


나는 서해 소청도에 살고 있는
딱정벌레목 소금잘록호리가슴땡땡이입니다
내 친구 염전넓적물땡땡,
가시점박이물땡땡이도 한 반이죠
출석 부르다 일 교시가 끝나기 때문에
물장군 선생님은
소. 잘. 땡
염. 적. 땡
가. 점. 땡 하고 우리를 부르시죠
그렇지만 누가 누군지는 잘 모르세요

ㅡ『동시마중』(2022년 1, 2월호)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뭇 생명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일까? 신이 창조하였고 신이 뭇 동식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었으니 주인인 것 같기도 하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집이 들판인 야생동물을 올무나 덫으로 마구 잡는다. 이처럼 주인이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의 면화농장 주인들처럼 말이다. 남벌(濫伐), 남획(濫獲), 동물학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독한 녀석들이 나타나 인류가 큰 위기를 마주한다면 그때 당당하게 하늘을 나는 애들은 딱정벌레가 아닐까? 소금잘록호리가슴땡땡이, 염전넓적물땡땡이, 가시점박이물땡땡이 외에도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애들이 많다. 물장군 선생님이 학생들 이름을 부를 때 너무 길어서 소. 잘. 땡, 염. 적. 땡, 가. 점. 땡이라고 부른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그런데 다 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누군지는 잘 모른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지구상에 언제부터 존재해 온 것일까. 인간이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 하면서 진화를 하는 동안 이 아이들도 진화를 한 것일까? 이 지구의 실제 주인은 얘네들이 아닐까? 우리에게 곤충은 해충과 해충 아닌 것으로 분류될 뿐이다. 물고기가 식용과 식용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 것처럼. 인간은 식물을 심고 옮기고 벤다. 약을 뿌려 곤충들을 떼죽음 시킨다. 벌과 나비의 개체가 너무 줄어들어 접붙이기를 인공으로 하고 있단다. 소금잘록호리가슴땡땡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염전넓적물땡땡이와 가시점박이물땡땡이도.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얘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배우려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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