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말씀
구상
그날 하루의 끼니를 때우는 것도
몸을 눕힐 자리도 마음에 두지 않고
무애행(無碍行)으로 한평생을 산 공초(空超)가
운명하던 날 시중을 들던 나에게
“자유가 나의 일생을 구속하였구나”
라는 말씀을 남겼다.
보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일깨운
나자렛 예수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서
바로 그분의 뜻을 이루고 가면서도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는다.
저들의 저 비명과 비탄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에서일까?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에서일까?
아니야, 결코 그게 아니야!
가령 저들의 저런 표백이 없다면
저들은 그저 자기 환상에 이끌려서
저들은 그저 자기 집착에 매달려서
그런 삶을 산 꼴이 되고 마느니
그래서 저들의 저 말씀은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 살아온
자기 삶의 마지막 재확인이요
자기 삶의 마지막 완성인 것이다.
ㅡ『구상문학총서 제3권 개똥밭』(홍성사, 2004)에서

<해설>
구상 시인이 평생 스승으로 생각하며 따랐던 사람이 있었으니 25년 연상인 공초 오상순 시인이었다. 오상순 시인은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보성고보와 조선중앙불교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었지만 40대에 접어들고부터는 직업도 없이, 어떤 단체에도 들어가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갔다. 서울의 다방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화를 받아 수십 권을 만들어 ‘청동문학’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종일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그런지 공초(空超)라는 호가 아주 잘 어울렸다.
구상은 생애 내내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공초가 “자유가 나의 일생을 구속하였구나”라는 말을 하고 숨을 거둔 이유가 궁금하였다.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채 하늘을 우러러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은 것이 궁금하였다. 무애행으로 한평생을 산 영적 스승인 공초과 영원한 생명을 일깨운 신앙상의 인도자였던 예수가 남긴 말의 뜻을 해독해보고자 쓴 시가 바로 「마지막 말씀」이다. 모두 자신의 삶과 죽음을 부정하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구상 시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 살아온/자기 삶의 마지막 재확인이요/자기 삶의 마지막 완성”으로써 이 말을 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괴테가 죽을 때 한 말은 “좀 더 빛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았던 공초는 자신의 자유로움이 누구의 희생 위에서 이뤄진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성자 예수는 자신의 행적과 죽음이 과연 성부 신이 바랐던 것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았을까. 아아,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무슨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죽을까.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