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37)/ ‘보낸다’와 ‘간다’의 차이–박진환의 「2022. 12. 31.」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37)/ ‘보낸다’와 ‘간다’의 차이–박진환의 「2022. 12. 31.」
  • 이승하
  • 승인 2023.05.1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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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2022. 12. 31. 

박진환


2022년을 보낸다
지난 5월엔 아내를 먼저 보냈다
다음은 내 차례
유한의 끝은 알지 못하지만
끝을 향해 간다
동행자 없는 단독자행
멈춤이 어디쯤인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생의 마무리
스스로를 가둔다는 것
자식들은 내가 아내를 보냈듯이
보냈다고 하든지 가셨다고 할 것이다
가고 보냄이 다르지 않으면서
같지 않음은 가는 쪽이 멸한다는 점이다
멸하기 위해 가는 멈춤이 허락되지 않는 길을
오늘을 뒤로 하고 간다
뒤가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한 점 피리어드를 향해

ㅡ『잡사운기ㆍ3』(조선문학사, 2023)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간다’와 ‘보낸다’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부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함께 하직하지 않는 한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보내고, 죽은 사람은 저승으로 간다. 박진환 시인은 2022년에 아내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2022년 12월 31일에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아내가 먼저 갔기에 나는 “동행자 없는 단독자행”으로 생을 마감할 것임에 착잡한 심정을 거둘 수 없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참으로 커, 남은 사람은 큰 데미지를 입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시인은 생각해본다. 나의 사후에 내 자식들은 나를 (저희들이) 보냈다고 할 것인가, (스스로) 가셨다고 할 것인가. 

 죽음만큼 확실한 것이 있을까. 유기체는 몽땅 다 죽게 되어 있다. 영혼이 있건 없건 천국이 있건 없건 가는 쪽의 육신은 멸하는 것이다. 간다는 것, 즉 산다는 것은 오늘을 뒤로 하고 내일로 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루를 살면 그 하루가 죽는다. 우리는 때가 되면 한 점 피리어드를 반드시 찍는다. 

 10월 26일에 죽을 줄 뉘 알았으랴. 출생 1917. 11. 14. 경상북도 구미. 사망 1979. 10. 26. 서울 궁정동 안가.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욕심을 냈기에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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