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41)/ 어머니의 노동으로 우리 집은–김찬곤의 「나는 아직」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41)/ 어머니의 노동으로 우리 집은–김찬곤의 「나는 아직」
  • 이승하
  • 승인 2023.05.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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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나는 아직 

김찬곤


학교 갔다 오면 어머니는 발목을 밟아 달라 한다.
발목에서부터 무릎까지
천천히
지그시 밟아 올라가면
“아, 시원하다”
하신다.

어머니는 식당 일을 나간다.
아침 일찍 나가 점심 식사까지
하루에 150상을 차릴 때가 있다고
한 상에 그릇이 스무 개, 그걸 혼자 다 하신다고
화장실도 못 가고

밤에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손을 주물러 달라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 손마디를 잡고
꾹꾹 쥔다.
엄지는 따로, 네 손가락을 한꺼번에, 나중에는 한 가락씩
아버지는 이렇게 힘들면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꾹꾹

어머니가 식당 일을 나가고, 아버지는 술을 끊었다.

나는 아직 변한 것이 없다.

ㅡ『동시마중』(2022년 9ㆍ10월호)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이 동시 속의 아버지는 일을 나가지 않는 실업자 상태였을까. 일을 해도 술로 하루의 피곤을 달래는 술주정뱅이였을 것이다.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이는 어머니다. 하루에 150개의 상을 차릴 때도 있으니 중노동이다. 설거지가 얼마나 힘든지, 집에서 모임을 가진 이후 설거지를 해본 이는 알 것이다. 정말 힘들다. 다리도 팔도 허리도 뻐근하다.

 오래 서서 일을 하면 보통은 종아리가 붓는다. 발목도 시큰시큰하다. 이 동시의 화자는 아직 어리다. 아이가 어머니의 발목에서 무릎까지 천천히, 지그시 밟고 올라가면 “아, 시원하다”고 하신다. 내 어머니가 그랬었다. 30년 동안 문방구점을 했는데 아침 일찍 가게로 나가 밤 10시쯤에 문을 닫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쓰러져서 종아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지 않고 주먹으로 때려 달라고 했다. 주무르는 것 정도로는 피로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손을 주물러 달라고 하였다. 지압할 줄 아는 아버지는 어머니 손의 피로를 풀어주면서 이렇게 힘들면 나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온 식구의 밥줄이 걸려 있는 것이 아내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마침내 술을 끊었다. “나는 아직 변한 것이 없다”가 동시의 제목이자 마지막 문장이다. 아이가 참 기특하다. 철이 일찍 들었다. 아련한 아픔과 슬픔을 전해주는 동시를 읽고 눈물짓는다. 실업자 남편을 대신한 어머니의 노동 덕에 나는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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