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46)/ 무명의 학도의용군들이여–장계원의 「겨울 산수국」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46)/ 무명의 학도의용군들이여–장계원의 「겨울 산수국」
  • 이승하
  • 승인 2023.05.26 19:53
  • 댓글 0
  • 조회수 37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 산수국
―영덕 장사*에서

장계원


빛보다 더욱 환한 그림자 하나 있다
버려진 길목마다 푯대 총총 꽂아놓고
오롯이 내일을 향해 펄럭이는 꽃이 있다

소금 낀 발자국을 구석구석 뿌려놓고
눈 덮인 해파랑 길 처연히 지키는 꽃
백골만 앙상히 남아도 꽃이라 불리는 꽃이 있다

*장사:어린 학도병들이 추운 바닷가 백사장에서 몸 바쳐 싸운 상사상륙작전 현장

ㅡ『낙서목간을 읽다』(목언예원, 2022)에서

 

<해설> 

산수국은 흰색 혹은 하늘색, 붉은색 꽃이 7~8월에 피고 달걀 모양의 열매는 9월에 익는다. 즉 제목인 ‘겨울 산수국’은 대단히 역설적인 제목이다. 경북 영덕 장사리에 가면 멋진 해수욕장이 있지만 장계원 시인이 기리고 있는 것은 꽃다운 나이에 전장에 투입된 어린 학도병들의 아까운 목숨이다. 시인은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과 전승기념공원에 세워진 희생자 위령비를 보고 왔나 보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북한국을 속이고자 교란작전을 펴기로 했다. 포항 북쪽 약 25㎞ 지점에 위치한 영덕군 장사리 일대의 북한군 점령지역에서 전개된 상륙작전에 북한의 관심사가 쏠리게 하고는 인천이라는 옆구리를 타격하자는 작전이었다. 문제는 이 작전이 학도의용군으로 구성된 육본 독립 제1유격대대의 772명 병사가 중심이 되어 수행한 작전으로서 10대의 어린 학도의용군이 이 작전 수행을 위해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작전 초기에 수송을 맡은 LST 문산함이 북한군의 반격으로 좌초하고 다수의 탄약을 유실하는 등 작전 개시 초반부터 난관에 빠졌지만 악전고투 끝에 상륙하여 북한군 제2군단의 주 보급로인 7번국도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전사 139명, 포로 39명의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4일 넘게 공격하여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과 낙동강 전선 동부의 북한군 전력 약화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의 유해는 지금까지 단 한 구도 찾지 못했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 2019년에 만들어졌다. 

장사리 일대의 꽃 중에는 시체 더미 위에서 피어난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눈 덮인 해파랑 길 처연히 지키는 꽃”은 그때 죽은 학도의용군들을 상징한다. “백골만 앙상히 남아도 꽃이라 불리는 꽃” 또한 군번도 없이 죽어간, 유해도 부모에게 전해지지 못한 학생들을 상징한다. 동해선 장사역이 개통함으로써 동해안을 낀 휴양 관광지가 되었지만 그곳에 가면 기념관과 기념공원에 가서 묵념이라도 하고 오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