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는 괴로움
―마하마야*의 노래
이승하
폭풍전야의 고요 같은 것
입덧이 끝난 뒤 배가 점점 무거워져 갔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나날이 가벼워져 갔지
그러던 어느 날 태몽을 꾸었지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 한 마리
내 오른쪽 겨드랑이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지
꿈속이지만 몸이 편안해지고 상쾌해지는 것이
마치 달디단 이슬을 먹는 것 같았지
별이 아프면 별똥이 되어 떨어지고
달이 아프면 구름 뒤에 숨고
강이 아프면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병이 깊으면 담담히 죽음 맞이하면 되지
오른쪽 옆구리에서 싯다르타가 태어났다느니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어갔다느니
갓난아기가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다”라고 외쳤다느니 하면서
내 태몽을 미화하지도, 이적異蹟을 만들어내지도 말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아픔이 왔을 때
이제 곧 죽을 것만 같았을 때
내 배 안에서 놀던 아기
바깥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온몸으로 우는구나
낳는 괴로움만 괴로움인가 태어나는 괴로움도 저리 큰 것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은
살이 찢어지는 아픔과
온몸으로 우는 울음으로 맺어져 있는 것을
* 마하마야(Mahā Māyā):싯다르타의 친어머니. 흔히 마야부인으로 불린다. 싯다르타를 낳은 지 이레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죽는다.
ㅡ『불의 설법』(서정시학, 2014)에서

<해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난 싯다르타가 궁궐을 나와 수행자가 되고,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자식을 낳고 이레 만에 죽은 어머니 마하마야 왕비였다. 싯다르타를 키운 것은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프라자파티인데 말이다.
내 어머니는 왜 나를 낳자마자 돌아가셨을까? 나를 임신하고 출산하지 않았다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생로병사의 의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끔 한 것은 바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마하마야였다. 스물아홉이 되도록 궁궐에서 궁녀들에 둘러싸여 산 싯다르타, 성주의 딸 야소다와 결혼해 아이 라훌라를 낳아 아버지가 된 싯다르타는 결국 궁을 떠난 고행의 길로 나선다.
이 시의 화자는 마하마야이다. 자기 자식을 신격화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내 태몽을 미화하거나 이적 이야기를 지어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왜? 내가 고통 끝에 낳은 아이이고 그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곧 죽고 말았다. 이 세상에 고통이 미만해 있음을 알리려고 그애는 태어난 것일 테니 그 탄생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있다. 생은 고(苦)요 공(空)이다. 낳는 괴로움과 태어나는 괴로움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할 오늘, 바로 사월초파일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