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정한모
하얀 베갯잇 부드러이 묻혀 있는 얼굴 위에 새벽과 참새 소리가 녹아드는 명암 속 깨었다 다시 조는 네 황홀한 수면(睡眠)에서부터 온종일 눈부신 하늘 가까운 경사에서 어린 머리를 쳐들고 나란히 익어가는 보리며 보리밭 그 부드러운 물결이며 처마 끝 뻗어가는 포도 수액 속에 잠열(潛熱)하는 석양에 이르기까지
이 발랄한 정신의 기구 안에 더불어 여물어가는 조그마한 알맹이고저 의지하는 것
ㅡ한 톨 밀알 그런 것이라 할지라도
ㅡ『내 유년의 하늘엔』(미래사, 1991)

<해설>
정한모 시인(1923〜1991)이 2월 23일에 돌아가셨는데 이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이 11월 15에 발간되었으니 시집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평생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문공부장관을 했으니 관운도 있었던 시인이다.
이 시의 주제는 간단하다. 6월이면 땅에 뿌리내린 모든 작물과 나무가 쑥쑥 자란다는 것이다. 보리밭은 들판을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가 되게 한다. 집에 심어놓은 포도나무는 석양의 숨은 열까지 빨아들이며 포도송이들이 알알이 싱싱하게 영글게 한다. 참새 소리에 눈뜬 화자는 이런 생명체들의 경이로운 생장을 보면서 나 또한 “이 발랄한 정신의 기구 안에 더불어 여물어가는 조그마한 알맹이고저 의지”하고 싶어한다. 나 또한 한 톨 밀알이 되고 싶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6월이다. 3남의 논이며 밭에 심어진 5곡이 6월 한 달 내내 햇볕을 잘 받아서 쑥쑥 자라길 바란다. 작년과 올해 마늘 농사가 대풍이라 폭락이 예상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마늘과 양파 수입을 결정, 농부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한두 사람의 실수가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일은 제발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농심이 천심인데 하늘이 벌을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