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3)/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승하의 「충무공이순신함 함교에서 본 보름달」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3)/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승하의 「충무공이순신함 함교에서 본 보름달」
  • 이승하
  • 승인 2023.06.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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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충무공이순신함 함교에서 본 보름달

이승하


수평선 위로 두둥실
만월이 떠올랐다 추석달이

이 나라 젊은이들 고향을 떠나와
가슴으로 안은 달이기에
저렇게 크고
저렇게 밝은 것이려니

그 옛날 충무공 이순신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빗겨 차고서 바라본 달을
내가 오늘 충무공이순신함 함교에서 본다
사관생도도 견시병도 보고 있겠지

이 배의 승조원, 편성요원들도 듣고 있으려나
충무공이순신함 뱃전에 머리 박는
저 바다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전날 부침개, 잡채 만들기 대회 때 만든 음식 차려놓고
아침에는 합동차례도 올리고
오후에는 윷놀이 제기차기도 하고
이윽고 태평양의 하늘에 떠오른 저 커다란 박덩이

내 마음도 한껏 부풀어 올라
둥그스름한 달이 된다 내 고향의 추석달이                            

ㅡ『해군』(2022년 9월호)에서 

<해설>

 6월 6일이 현충일이고 25일이 한국전쟁 기념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15일이 제1연평해전 승전기념일이고 26일이 대한해협해전 전승기념일이고 29일이 제2연평해전 승전기념일임을 아는 사람은 해군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해군 출신이 아닌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 

 해군사관생도들의 세계순항훈련에 동참하여 2018년의 추석을 충무공이순신함에서 보냈다. 그때 배에서 동고동락했던 전단장 이하 참모진, 사관생도, 승조원, 편성요원, 군악대, 수병이 보고 싶다. 추석 전날에 전 굽기 대회, 잡채 만들기 대회가 열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경연대회라기보다는 서로 먹여주기도 하고 네가 최고라고 웃어가면서 진행되는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몇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취사병들이었다. 너무 많은 재료가 한꺼번에 나간다는 생각에서인지 시종 떨떠름한 표정으로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양과 맛, 창의성을 심사기준으로 삼아 심사가 이루어졌는데 심사위원 5인 중 한 사람인 이수열 전단장이 주는 점수를 의식해 별 모양의 전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결과를 보니 별 모양이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이 대회 덕분에 그날, 함정에 탄 모든 이가 아주 맛있는 각종 전과 잡채를 실컷 먹는 호사를 누렸다. 다음날 아침 갑판에서 합동차례식이 열렸다. 그날 함교에 올라가서 본 달이 인상적이라 이 시를 썼다.
 
 추석 다음날 밤 7시에 갑판에서 음악회 ‘별이 빛나는 밤에’가 열렸다. 날씨가 안 좋아 별이 안 보이는 밤이었지만 개그맨 출신 MC병이 “하늘에 별은 안 보이지만 이 배에는 별이 있다”는 재미있는 멘트로 무대를 열었다. 군악대는 상상 이상으로 멋진 무대를 펼쳤다. 훈련과 멀미와 향수에 시달리는 모든 사관생도, 승조원과 편승요원이 2시간 동안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마음껏 연주와 노래와 춤을 즐겼다. 추석 행사 마칠 무렵 전단장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내년 1월 19일 이 배가 진해항에 입항하여 여러분 모두 아무 탈 없이 가족의 품에 안길 때까지 여러분 모두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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