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5)/ 전쟁이 언제 끝나려나–전자윤의 「전쟁은 끝났을까」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5)/ 전쟁이 언제 끝나려나–전자윤의 「전쟁은 끝났을까」
  • 이승하
  • 승인 2023.06.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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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전쟁은 끝났을까

전자윤


어느 날 동물들은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끝났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밤에만 시력이 좋은 올빼미는
밤새도록 무섭게 쏟아지는 불똥을 보고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했다

낮에만 시력이 좋은 매는
한낮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개미를 보고
전쟁은 끝났다고 했다

몸에서 내뿜는 열을 보는 뱀은
따스한 온기가 전혀 없는 걸 보고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했다

색깔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개는
헷갈리는 눈 대신 정확한 코로 냄새를 맡고
전쟁은 끝났다고 했다

모르겠다고 한 동물은
개구리뿐이었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만 보는 개구리는
입에 맞는 파리가 움직이길 기다릴 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ㅡ『동시발전소』(2023년 봄호)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동시치고 참 특이하다.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루고 있다. 동물들이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끝났는지 지금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올빼미와 뱀은 전쟁을 지금도 하고 있다고 보았고 매는 전쟁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개구리는 모르겠다고 진중론을 폈다. 

 선조 때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지 안 일으킬지 알아보고 오라고 통신사를 보낸 것을 연상케 한다. 서인인 황윤길은 틀림없이 일본이 공격해올 거라고 말하고, 동인인 김성일은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일본인이 머무는 왜관의 일본인들이 전쟁을 대비해 모두 철수해 텅텅 비어 있었는데 말이다. 조정의 낙관론은 김성일의 말을 따르고 말아 조선은 결국 무방비 상태로 임진왜란을 맞는다. 그해 6월 25일도 일요일이라고 군인들이 휴가와 외박을 나가서 병영이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1년 3개월이 지났는데도 끝나지 않고 있다. 동시라고 해서 착하게 살자고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 왜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야기해주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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