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6)/ 오늘이 환경의 날이지만–고형렬의 「악몽」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6)/ 오늘이 환경의 날이지만–고형렬의 「악몽」
  • 이민우
  • 승인 2023.06.05 10:57
  • 댓글 0
  • 조회수 4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악몽 

고형렬


어제 저녁 퇴근 때 본
한강가의 발전소가 꿈에 보였다
지금까지 겉으로 알고 있었던
화력발전소가 아니었다
둥근 문에서 드럼통이 나왔다
굴뚝에서는 어마어마한 연기가
어느 아침인가처럼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그 속으로
납가루 같은 것이 춤을 추었다
밑쪽 물바닥에서는 수증기가
떠오르고 한쪽에 남은 그릇에서
처음 본 고체들이 모여져서
소각되었다 그 다음이었다
그것들은 큰 기계에 의해서
압축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것들은 시멘트와 범벅을 하여
이백 리터들이 강철 드럼통에 
뜻밖에도 이웃에 사는 박씨가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퍼넣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하게도 그것들을 그대로
발전소 지하실로 옮기고 있었다
지하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지하실엔 죽은 물이 가득하였다

ㅡ『서울은 안녕한가』(삼진기획, 1991) 

 

<해설>

기존의 화력발전소가 아니다. 최첨단 시설로 건설된 원자력발전소에서 무슨 사고가 나서 그것을 은폐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드럼통에 담긴 무언가를 태웠다. 납가루 같은 하늘로 춤을 추며 올라갔다. 다음에는 고체를 긁어모아서 소각하였다. 이어서 한 행위는 큰 기계로 압축해 시멘트와 범벅, 강철 드럼통에 퍼넣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선 그 통을 발전소 지하실로 옮기는데 지하실 바닥에는 ‘죽은 물’이 가득하였다. 사람 몸에 해로울 것이 분명한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을 상당히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 1만833개의 사용 후 연료봉이 저장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연료봉들에는 대략 3억2,700만 퀴리의 장명(長命) 방사성물질이 들어 있다. 그중 1억3,300만 퀴리는 세슘-137인데, 이것은 체르노빌 사고 때 방출된 양의 85배 정도이다.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의 사용후핵연료의 거의 전부가 고도의 지진 발생 위험지대에 위치한, 취약한 수조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상황의 긴급성은 일본 동북지역 주변에서 진행 중에 있는 지진활동 때문에 더 심각해지고 있다.”(로버트 앨버리즈, 「후쿠시마, 어째서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한 사태인가」, 『녹색평론』, 2012. 5-6월, 14~15쪽.)

이 글을 읽고 보니 고형렬 시인의 시가 더 잘 이해된다. 이번에 일본에 다녀온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이 일본에 면죄부를 주지 않을지 걱정된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방사능 오염수 130여만 톤을 올여름부터 바다에 방류할 예정이다. 시인은 이미 90년대 초에 원전사고와 부실처리의 위험성을 예고하였다. 오늘은 세계환경의 날, 즉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한 국제연합 기념일이다. 해양 오염과 지구 온난화 등 많은 환경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환경보호를 위해 우리의 행동을 촉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한 오늘, 고형렬 시인의 시를 읽는다. 우리 정부가 환경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