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7)/ 현충일에 읽고 싶은 시–유치환의 「전우에게」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157)/ 현충일에 읽고 싶은 시–유치환의 「전우에게」
  • 이민우
  • 승인 2023.06.0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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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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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에게
ㅡ고저(庫底)에서

유치환


X연대 의무대 입구 앞에
아직도 연신 포성의 울림이 들려오는 8킬로 밖 전투에서 
이제 마악 단가에 거적을 덮어 실려 온 전사체 둘

전우여
너희는 어디메 남도의 농촌 두메에서 온 이등병
그 치열하던 형산강 전투를 거쳐
양말도 없는 해진 발에 쉴 새 없는 행군과 치운 노영(露營)과
때로는 하루에 한 덩이 주먹밥도 오기 어려운 전투를 하며
너희가 우둔하므로 중대장의 눈물 나는 꾸지람도 들으며
오직 묵묵히 삼팔선 넘어까지 신산(辛酸)의 길을 와서
마침내 젊은 목숨을 바칠 곳을 여기에 얻었나니 

나는 아노라
언제나 말이 없고 무뚝뚝한 얼굴 그 솔직한 눈매 안에
뉘 몰래 안은 너희만의 한량없는 젊은 욕망과 고뇌를
그리고 조국의 이름 뒤에 숨어 
너희의 죽음을 발디딤하는 무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오늘 바친 바 그 귀한 목숨과 고난의 뜻을
다만 억울한 것으로만 스스로 원통할까 두려워하노니
너희가 그렇게도 그리던 고향에선
이날의 용감한 전사는 꿈에도 알 바 없이
한 줌 햅쌀을 보거나 하루 조석이 싸늘만 하여도
아득한 아들네의 소식에 늙은 어버이의 눈시울을 적시리니

사랑하는 형제여 전우여 부디 고이 명목(瞑目)하라
진실로 너희의 죽음인즉 이대로 이름 없이 엎뎌진 것이 아니라
끝내 자신의 비참 위에 서야만 하는 이 인류에의
아아 통분한 통분한 절치(切齒)였나니

ㅡ『보병과 더불어』(문예사, 1951)에서

 

<해설>

남쪽의 문인 가운데 직접 종군한 희유한 예를 보여준 이가 유치환이다. 그는 1950년 10월 2일 국군 최전방에서 생사를 함께 하며 병사들과 함께 38도선을 돌파하였고 이어 양양, 장전, 소동정호, 망양, 문천, 원산까지 전진했다. 원산 시가전은 1주야 이상 계속된 격렬한 공방전이었지만 결국 국군이 탈환하였고, 북청까지 진격했다. 그러다 중공군의 개입(중공군 선발대는 10월 13일 압록강을 건넜음)으로 후퇴하는 부대를 따라 남으로 되돌아왔다. 생사기로의 최전방을 따라 종군하면서 10여일 간 사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것이다.

‘고저(庫底)’는 강원도 통천군 고저면으로 지금은 북한 땅이다. 이곳의 연대 의무대 앞에 실려 온 전사자 2명을 보고 쓴 시인데 제2연은 상상을 해본 것이다. 남도의 농촌 출신일 법한 두 전사자는 치열했던 형산강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을 텐데 그만 젊은 목숨을 바치고 말았다고 애통해 가슴을 친다. 그간 이 두 군인이 겪었을 고난을 유치환은 “양말도 없는 해진 발에 쉴 새 없는 행군”과 “치운(추운) 露營”, “하루에 한 덩이 주먹밥도 오기 어려운 전투”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두 병사는 군 생활에 적응을 제대로 못해 중대장에게 호된 꾸지람도 들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갖가지 난관을 극복하면서 38선을 넘어 여기에 이르렀는데 그만 전사하고 말았으니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이다. 제3연의 “아득한 아들네의 소식에 늙은 어버이의 눈시울을 적시리니”는 고향의 부모가 아들의 전사 통보에 얼마나 애통해할까, 하면서 위문의 뜻을 담아 쓴 것이다. 제4연의 “사랑하는 형제여 전우여 부디 고이 명목하라”는 애도의 뜻을 다시금 표한 구절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오늘은 현충일,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가 누구 덕분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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