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모
한용운
산 밑 작은 집에
두어 나무의 매화가 있고
주인은 참선 중이다.
그들을 둘러싼 첫 겹은
흰 눈, 찬 바람, 혹은 따스한 빛이다.
그다음의 겹과 겹은
생활고ㆍ전쟁ㆍ주의ㆍ혁명 등
가장 힘있게 진전되는 것은
강자와 채권자의 권리행사다.
해는 저물었다.
모든 것을 자취로 남겨두고
올해는 저물었다.
ㅡ『한국현대시문학대계 2/한용운』(지식산업사, 1981)
<해설>
우리는 한용운 하면 시집 『님의 침묵』을 떠올리지만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외에도 시 21편, 시조 21편, 한시 139수를 남겼다. 동시도 3편 썼다. 『박명』 『철혈미인』 『죽음』 같은 장편소설도 썼다. 놀랍게도 시인 한용운답지 않게 형이하학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제1연은 그저 평이한 시상 전개라서 무엇을 새삼스레 느낄 수도 없다. 세모니까 매화나무가 피어 있을 리도 없는데 무슨 일인지 매화나무가 있는 집에서 주인이 참선 중이라고 한다. 매화나무와 주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흰 눈과 찬 바람 외에 따스한 빛도 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말인가? 시가 뭐 이래? 한용운이 쓴 시가 맞나?
그런데 산골 마을, 매화가 있는 집의 주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생활고와 전쟁과 주의(主義), 즉 이념과 혁명 네 가지라고 한다. 이렇듯 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일제강점기 말기, 한용운은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조선인 학병 출정을 결사반대하였다. “가장 힘있게 진전되는 것은/강자와 채권자의 권리행사다”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판다. 새해를 앞둔 어느 해의 세모에 한용운은 이렇듯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다.
마지막 연, “해는 저물었다./모든 것을 자취로 남겨두고/올해는 저물었다.”가 희망적인가? 올해는 이렇게 가고 말았지만 내년에는 그래도 희망적인 일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예상을 한용운은 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압제에 놓여 있는 한 세상이 좋아지리란 예측을 못하겠다고 노골적으로야 말하지 않지만 이제는 새로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놀랍게도 일본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한 번도 넘어간 적이 없었다. 1937년에는 불교 항일단체인 만당(卍黨)의 배후자로 검거,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석방되기도 한다. 그해에 독립군 전쟁 중 사망한 김동삼의 시신이 조선으로 도착하자 겁이 나 아무도 그의 시신을 거두거나 수습하려 하지 않았는데 한용운이 홀로 찾아가 통곡하며 시신을 수습한 일도 있었다. 광복의 날 1년여 전인 1944년 6월 29일(음력 5월 9일)에 심우장에서 입적하고 말았으니 그 뜻이 그만 꺾이고 만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의 정신은 바로 엊그제에 인제군 만해마을에서 행해진 만해축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