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인가?
신순임
지구촌 안 가는 곳 없이 다 다니며
강, 약 조절해 유행 바꾸며
하고픈 대로 다 한 코로나 19는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깝게 하라더니
이웃과 거리 확실히 둔 새집들로
낯선지도 그려 놓았는데
지방 선거 홍보 문자는 전국 동시에 누빈다
아들 군부대 앞 여장 푼 강원도 인제군
밥 한 그릇 비운 충청도 논산
아이들 학교 앞 잠시 머문 포항
터 잡고 사는 주거지에서 숨차게 보내와
익히지 못한 축지법이 스팸 처리하는데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탈탈 털리는 신상이 무서움 덮어쓰며
2년여 만에 간 대형마트
용광로처럼 건네보는 무인 계산대 앞
땀 절은 신용카드 등신 반열 등록시키니
코 밑에서 허탈하게 올려보는 시니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원망할 힘 놓고
도우미 찾는 눈길
미로 속 안개 걷으며 운다
나는 누구인가?
ㅡ『탱자가 익어 갈 때』(스타북스 2023)

<해설>
2020년과 2021년 두 해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월급이 나왔다. 줌으로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줌도 하고 대면 수업도 했지만 학생들이 몽땅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줌으로 할 때보다 얼굴을 더 알아볼 수 없었다. 올해 1학기 때야 비로소 학생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약한 학생은 계속 마스크를 하고 수업에 들어왔다. 참으로 답답한 나날이었다. 문학수업이 아니라 가면무도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순임 시인은 디지털 세상이 되었음을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더욱더 실감했나 보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기계에 몽땅 체크가 되는 세상이다. 조지 오웰은 『1984』 『동물농장』,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미래사회에 일어날 일이라 생각하고 썼는데 다 실제로 일어났다. 그런데 이들 작가도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은 예상치 못했다. 알베르 카뮈는 중세 때의 페스트균이 다시 퍼지리라 예상하고 『페스트』를 썼는데 우리가 겪은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이었다.
2년여 만에 무인 계산대 앞에 섰다니, 철저히 은둔했었나 보다. 사실 2020, 21년은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았다. 이 기간은 내가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웬걸, 하루에 몇 만 명이 감염되어도 우리는 이제 무신경하게 살아간다. 서울 전역이 교통체증이고 식당마다 카페마다 만원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놓친 것이 아닐까?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