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便), 론(論)하다
전선용
저것은 변(便)이 아냐, 물올라 짐짓 고운
산대박 애기똥풀, 상춘객 멀미 나게
산그늘 밀어붙이고 열심 내어 핀 거라
어머니 괜찮아요, 우리가 남인가요
꽃밭에 뒹굴다가 고쟁이에 꽃물 든들
누구라 뭔 말 하겠소, 봄꽃 향기 푸르오
길 가다 혹여라도 옛친구 만나거든
생전에 좋아해서 노랗게 수놓은 꽃
침대보 아름 지미어 수의 했다 말하소
내년 봄, 불쑥 깊어 봄 마실 오실 때면
노란색 그 옷 말고 자줏빛 목련 치마
누구든 알음 보란 듯 하늘대며 오소서
ㅡ『그리움은 선인장이라서』(생명과문학사, 2023)

<해설>
제목의 ‘변’은 똥이다. ‘똥을 논하다’를 고상하게 쓴 것이다. 어머니가 배변 조절을 못하게 되자 시적 화자인 아들이 어머니를 위로한다. 꽃밭에 뒹굴다가 고쟁이에 꽃물 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냄새가 고약하여 본인이 죄스러워하자 “봄꽃 향기 푸르오”라고 돌려 말한다. 환자복이든 평상복이든 옷에다 똥을 싸면 참 난감해진다. 옷을 벗어야 하니까. 여자 간호사 앞에서일지라도 바지와 팬티를 벗는 것도 쑥스러워 죽을 노릇이고 아들 앞이라고 해서 부끄럽지 말란 법이 없다.
대체로 똥이란 노란색이나 고동색 계통이다. 설사면 더 골치 아프다. 옷만 치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닦거나 씻겨주어야 한다. 옷에다 왕창 실례했을 때, 본인이 아니라 타인이 처리하는 경우를 갖고 쓴 이 시조는 제목부터 미화를 했고 내용도 그렇다. 그런데 환자를 옆에 두고 돌보아야 하는 이런 경우가 내게는 영영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 옆에서 돌보는 시절이 지나가면 본인이 옷에다 실례하는 시간이 오는 것이다.
절세의 미인도 아이돌 스타도 때가 되면 치매노인이나 중풍환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운명이 내게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구든 한 번은 입는 옷이 수의(壽衣)가 아닌가. 이 시조는 죽음을 비극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모든 생명체의 이치요 순리라고 생각하여 쓴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변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가 올지 모르는데 돈을 많이 갖고 있다고, 권력이 높다고 으스대면 안 될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