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46) 행복과 외로움 사이―고정희의 「별」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46) 행복과 외로움 사이―고정희의 「별」
  • 이승하
  • 승인 2023.09.0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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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한송희 에디터

고정희


행복이라도 잘 다듬지 않으면 요란스런 무덤이 되고
외로움이라도 잘 다듬으면 별이 된다고
유월, 긴 장마비가 말하고 떠났네

―『현대시학』(1990. 8)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지인이 부친상을 당해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여든이 넘기는 했지만 비슷한 연배의 분들과는 다르게 큰 병 없이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파킨슨병이 약하게 와서 조심하면서 지내던 중이었다고. 코로나에 걸리자 모든 장기가 급격히 약해져 입원 한 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결국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간 셈이었다. 어제 만난 분은 두 달 동안 코로나로 죽을 고생을 했는데 간신히 살아났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승사자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서성이고 있는 셈이다. 고정희 시인(1948〜1991)도 여름에 지리산 등반에 나섰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계곡물이 순식간에 불어났고, 그 물에 휩쓸려 숨을 거두고 말았다. 43세, 한창때였다. 그런데 숨지기 바로 1년 전에 내년에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견이라도 한 양, 이 시를 썼다.

 행복이라도 잘 다듬지 않으면 요란스런 무덤이 된다고 했다. 촌각을 아끼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 알아야지, 자꾸 자신을 비관하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얘기가 아닐까. 외로울 때도 비관하지 말고 그 외로움을 잘 다듬으면 별이 된다고 했다. 별은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별이 인도해주는 삶이면 외로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고독감이 우울증으로 가지 말기를 바라면서 고정희 시인은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시인이 간 지도 32년이 되었다. 살아생전 시인과 밥도 같이 먹었고 친필사인을 해준 시집도 몇 권 갖고 있는데 시인은 먼 세상으로 갔다. 시인의 가르침대로 행복과 외로움을 잘 다듬으며 살아야겠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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