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록도ㆍ눈물
문효치
이 섬이 왜 아름다운가를 알았네
바다에 떠 있는 신의 눈물
그 투명한 눈물 속에서
아열대 나무는 자라고
제비 날고, 떨어져 죽고
커다란 눈물이 왜 아름다운가를 알았네
견고하게 굳어 버린 금강석 덩어리
그 보석에 박힌
문둥이의 슬픔은 반짝거리고
그리움 날고, 떨어져 죽고
슬픔이 오래가 이끼가 돋고
아픔도 오래가 곰삭아 버리면
그냥 멍한 아름다움이 된다는 걸
그냥 멍한
ㅡ『문학사상』(1997. 7)

<해설>
내가 가본 소록도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주변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늘과 바다, 나무와 꽃, 집과 길이 동화책 속 그림 같았다. 하지만 소록도는 100년 넘게 한센병 환자들이 집단으로 수용되어 있던 곳이었다. 수용이 아니라 격리되어 있던 곳이었다. 문효치 시인의 이 시는 발표한 지 26년이 되었는데 지금 읽어도 가슴을 찌릿하게 하는 감동을 준다. “바다에 떠 있는 신의 눈물”이라니, 이보다 더 소록도를 잘 표현할 수는 없다.
한센병은 전염병으로서 감염되면 피부가 짓물러지고 나중에는 발가락,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다. 환자는 얼굴도 일그러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기 때문에 격리 수용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리라.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8월, 칙령에 의거해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의 요양병원을 전국 각지에 세우는 작업을 했는데 특별히 한센병 치료를 위한 전문 요양소를 소록도에다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 섬에 살던 원주민을 뭍으로 쫓아내고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이곳에 강제로 수용, 인권 사각지대로 만들었다.
시인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이 섬을 눈물의 섬, 슬픔의 섬, 아픔의 섬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이 섬에 와 살게 되고 세월이 한참 흐르게 되면 슬픔도 아픔도 곰삭아 “그냥 멍한 아름다움”이 된다고 했다. 환자들은 건강한 몸으로 뭍에서 보낸 세월도 차츰 잊을 것이다. 문효치 시인은 수많은 사람의 슬픔과 아픔을 이 한 편의 시로 보듬었다. 특히 여기서 살다 여기서 죽은 환자들을.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