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술
방지원
자 가까이
우리 한 잔 해요
당신 좋아하는 와인이에요
요즘 거긴 어때요
여긴
명이 긴 바이러스 때문에 혼란스러워요
아이들은 모두 바쁘대요
이건 당신 잔
이건 내 잔
짠!
당신은 여전히 젊고 멋져요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좋아요
ㅡ『왼쪽 귀에 바닷소리가 난다』(미네르바, 2023)

<해설>
이 시는 현실세계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멋진 환상에 잠겨본 여성 화자의 혼잣말 같다. 제목은 ‘혼자서 마시는 술’을 뜻하는 ‘혼술’이지만 첫 연부터 같이 한잔하자고 권하는 내용이다. 제2연의 ‘거긴’과 ‘여긴’이란 시어가 변수다. 명이 긴 바이러스 때문에 혼란스러운 여기는 지상(혹은 이승)인가 대한민국인가.
제 3연에서 풋!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의 아이들은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취준생도, 직장인도 다 바쁘단다. 방콕족(히키코모리) 아이도 바쁘다. 아이와는 대화가 잘 안 된다. 아이들은 바쁘니 우리끼리! 와인을 당신 잔에 따라 짠! 건배를 한다. 당신은 여전히 젊고 멋지다. 이 세상에 없는 당신이기에.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좋아요”라는 문장으로 시가 끝나지만 제목은 ‘혼술’이다. 상상 속의 건배요 환상 속의 대작이다. (20세기 신조어 중에 혼밥은 알 테고, 혼영도 있다. 혼자 보는 영화다. 현대인은 다들 외로운 단독자다.)
이 시는 남편의 이른 죽음으로 외롭게 두 아이(혹은 셋?)를 키운 시적 화자가 밀려드는 외로움을 어쩌지 못해 혼자서 와인 병을 따고서 자작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남편은 거기에 있고,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바쁘다며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외로운 화자는 혼술을 하면서 젊은 날의 당신을 떠올린다. 여전히 젊고 멋진, 지금 이 세상에 없는 당신을.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