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55) 시상 엄니들의 야그가 사라지면―최승권의 「조도미장원」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55) 시상 엄니들의 야그가 사라지면―최승권의 「조도미장원」
  • 이승하
  • 승인 2023.09.13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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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조도미장원 

최승권

  
쑥 톳 미역 우럭 장애 간재미 하네들이

몸뻬 다리를 꼬고 바다를 보며 한나절 나란히 앉아 머리를 푸르게 말고 있다.

여긔 오문 시상 엄니들 야그 다 돌덜 말려서 빠마된당께라우

고구마 한 솥 나눠 먹은 노을 속 검은 날개 새 떼들은

흐린 유리창 밖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간다.

ㅡ『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문학들,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진도에서 조도까지는 35분쯤 걸린다. 조도는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모양의 섬이라고 하여 새섬이라고도 부른다. 머리 쪽은 큰 섬, 꼬리 쪽은 작은 섬인데 바다를 매립해 두 섬을 연결, 하나의 섬이 되었다. 24가구 총 70여 명이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장애’는 ‘장어’일 것이다. ‘하네’는 ‘할아버지’의 전라도 사투리지만 ‘할머니’로 해석할 수 있다. 제1행에 나오는 이런 것들을 말리듯이 머리를 말리고 있는 조도의 할머니들이 있다.

 이 시에서 제일 주목을 요하는 연이 제3연이다. 표준말로 표기하면 ‘여기에 오면 세상 어머니들의 이야기들이 다 돌돌 말려서 파마가 된다’일까. 그래서 제목도 ‘조도미장원’이 된 것일 테고. 해산물을 말리며 할머니들이 수다 떠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고구마 한 솥 쪄 나눠 먹는 인심이 남아 있는 고장이 바로 조도다. 그런데 “흐린 유리창 밖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가는 “노을 속 검은 날개 새 떼들”은 기러기 떼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이 섬에 저녁이 온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대단히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다. 섬에서 살아보지 않은 해설자이기에 납득이 잘 되질 않는다. 나중에 시인을 만나보면 물어보리라. 

 수많은 하네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혹은 소일삼아 해산물을 바닷바람에, 햇살에 말리면서 살아왔으리라. 앞으로 그런 분들이 할 일이 없어지면 큰일이다. 지인들 중에는 회를 한동안 안 먹겠다는 이, 올해까지만 먹겠다는 이, 해산물은 멀리하고 주로 육류를 먹겠다는 이, 일단 안 먹으면서 사태를 보겠다는 이가 있는데 모두 어부들과 횟집의 생계를 말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바닷가 사람들, 어부들, 섬사람들, 시내 횟집들 모두 생계에 타격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바닷가 엄니들의 야그를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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